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인사이트] 좌회전↔우회전 오락가락… 올랑드 민심·경제 다 잃을 위기

일자리·성장 공약 밀어붙이다 돌연 법인세 감면 등 우파행보<br>최근엔 다시 "긴축 없다" 주장… 정책 혼선으로 경제 더 악화<br>지지율 30%로 추락 역대 최저


'미스터 평범(Mr. Normal)이 타격을 받고 있다'(영국 일간 가디언)

'무슈 비인기(Monscier unpopular)의 극적인 추락'(독일 슈피겔)


'프랑스 현대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디지털저널)

요즘 유럽에서 가장 맥을 못 추는 주요국 지도자를 꼽으라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첫손에 꼽힌다. 좌파 이념과 성장 전략을 기치로 내건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을 꺾고 17년 만에 사회당 정권을 수립한 지 10개월. 취임 직후 59%에 달했던 지지율은 어느새 30%로 반토막이 났다. 이는 1981년 이후 역대 프랑스 대통령 가운데 취임 10개월 후 기준으로는 가장 낮은 수치이자,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 대표의 지지율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처럼 올랑드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실업률이 14년 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탓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올해 프랑스 경제성장률이 0.1%에 그치는 반면, 실업률은 1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올랑드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진보 이념을 내세워 대권을 거머쥔 그가 경제정책에서 좌우파 성향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등 방향성을 잃은 데 있다.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반대파는 물론 지지층으로부터도 신뢰를 잃게 된 것이다.

올랑드는 취임 초기만 해도 자신의 공약들을 자신 있게 밀어붙였다. 그는 ▦연금 수급 연령 하향 ▦가족 수당 확대 ▦에너지 가격 상한제 도입 ▦연소득 100만유로 이상 근로자에 75% 소득세 추징 등 포퓰리즘에 근거한 '큰 정부 정책'을 속속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그의 태도는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같은 좌파계열인 루이 갈루아 국가경쟁력위원장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개혁이 없으면 프랑스는 스페인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면서다. 갈루아는 "프랑스가 비상 사태에 직면했다"며 소득세를 삭감하고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해 기업 부담을 줄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산업경쟁력 강화보고서를 내고 개혁을 촉구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올랑드가 개혁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올랑드는 한달 뒤 이를 전격 수용했다. 올랑드는 법인세 감면으로 3년간 450억유로의 세액을 공제해주겠다고 했으며 국내총생산(GDP)의 56%를 차지하는 공공지출을 줄이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는 등 본격적인 '우파'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긴축보다는 정부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을 약속했던 공약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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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최근에는 또 다시 좌파 성향의 발언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지난 12일 파리 디종을 방문한 그는 "올해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7%가 될 것"이라며 올해 더 이상의 긴축은 없다고 밝혔다.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지는 "올랑드가 왼쪽으로 가겠다고 표시하면서도 오른쪽을 보고 있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방향성을 잃은 대통령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장관들과 국회의원 사이에서는 "대중은 터널의 끝을 볼 수 없으니 리더가 이를 제시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회주의자인 리옹의 제라드 콜롬 시장도 최근 "명확한 언어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며 올랑드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일자리와 성장을 약속한 공약을 실천하기는커녕 정책 혼란 속에 경기 악화가 지속되자 대중의 분노도 들끓고 있다. 최근 디종을 방문한 올랑드 대통령은 지나가는 여성에게 사진 촬영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해 공개적인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리더십을 잃고 헤매는 올랑드의 행보는 프랑스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경기 악화가 다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특히 최근 프랑스의 경제 상황은 최악의 부진에서 벗어나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는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대조를 이루며 프랑스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올랑드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킷에 따르면 프랑스의 제조업경기를 나타내는 2월 복합 구매자관리지수(PMI)는 43.7을 기록하며 7개월 연속 위축된 반면 독일은 53.3으로 프랑스를 월등히 앞섰다. 대표적 재정위기국인 스페인(45.7), 이탈리아 (45.4)도 여전히 경기가 위축국면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프랑스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이를 넘으면 경기확장을, 하회하면 경기수축을 의미한다.

게다가 다국적 기업들은 노동 개혁에 지지부진한 프랑스를 버리고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인접국으로 이탈하고 있다. 지난해 4ㆍ4분기 프랑스의 단위당 노동비용은 116.3으로 스페인(103.9)이나 포르투갈 (103.3) 보다도 높았다. 단위노동비는 임금을 노동생산성으로 나눈 값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노동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최근 프랑스 르노 자동차가 오는 2016년까지 프랑스 내에서 직원 수의 16%에 달하는 총 7,500명을 감원하는 대신 스페인 내 인원을 확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일 올랑드 정부에서 탈세와의 전쟁을 주도해 온 제롬 카위작 예산장관이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를 통한 조세 포탈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인 19일 전격 사임했다. 부자증세를 추진하는 올랑드 정부에서 불거진 이번 비리 파문은 가뜩이나 위태로운 올랑드의 정치적 입지를 한층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자신의 좌파 성향과 시장의 요구의 충돌 속에서 계속되는 올랑드의 갈지(之)자 행보에 유럽 경제2위국인 프랑스의 앞날은 위태롭기만 하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올랑드가 중도 좌파 출신으로 대대적 개혁에 성공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전 총리처럼 향후 프랑스의 복지체계를 수술하고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랑드의 한 측근은 "그는 어려운 결정은 언제나 피하는 편"이라며 위기 돌파에 필요한 리더십 부재가 오늘날의 프랑스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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