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결제 혁명] (끝) 전문가 3인 좌담회

스마트카드가 상용화되고 네트워크형 전자화폐가 등장하는 등 `결제 혁명`이 경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기반으로 첨단 결제시스템을 앞서 도입해 `세계의 실험장`으로 급부상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결제수단이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 전반에 깊숙히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산업과 경제의 틀을 바꾸며, 나아가 세계경제의 축을 이동시키는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결제혁명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기적ㆍ전략적 관점에서 관련 산업을 육성해야 하며 법과 제도의 정비도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휴 한국전자지불포럼 사무국장=첨단 결제수단의 발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입니다. 지난 40년간 전세계로 확산돼온 마그네틱선을 이용한 `구형 신용카드`는 결국 한계에 왔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전자결제 수단으로 IC칩을 이용한 스마트카드가 등장했습니다. 신용카드의 위변조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넣어 부가 서비스가 가능한 차세대 결제수단입니다. 위변조 부문만 짚어보더라도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 부정사용액이 4,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정도영 비자코리아 이사=동감입니다. 지난 89년부터 스마트카드를 쓰기 시작한 프랑스의 경우도 카드 부정사용을 막기위해 IC칩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신용카드 부정사용액을 원화로 환산하면 500억원 정도 됩니다. 문제는 바로 `비용`과 `표준` 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일찍 IC카드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지만 자체 표준을 쓰다보니 세계적인 기술표준인 EMV(Europay, Master card, Visa card 공동의 기준)로의 전환은 오히려 늦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뒤늦게 시작됐지만 아ㆍ태지역은 2008년, 전세계적으로는 2010년까지 모든 카드가 스마트카드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세계가 차세대 결제수단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임호 한양대 교수= 차세대 결제기술을 도입하는 시기가 오히려 늦었다고 봅니다. 훨씬 빨랐어야 합니다. 요즘 신용카드는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꼭 써야 한다면 신용카드로 기프트카드와 같은 선불카드를 사서 씁니다. 신용카드 번호가 주유소 등에서 결제하고 나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너무나 쉽게 복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결제 기술의 도입 비용을 업체들이 모두 부담했습니다. 그러나 신기술의 혜택은 소비자들이 직접 받는 만큼 앞으로는 소비자들도 이 돈을 나눠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결제기술이 자리를 잡아야 고객의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조 국장=지금 청소년들이 인터넷 상에서 아바타 등의 아이템을 구입하면서 소액결제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스템은 휴대폰 번호나, 전화번호만 알면 누구나 쉽게 결제를 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님 몰래 아이템을 수백만원어치 구입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산업계에서는 교통카드 뿐 아니라 전자화폐에도 공동으로 쓸 수 있는 보안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자화폐를 충전해 이 보안시스템을 통해 결제하도록 하면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보안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전자화폐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물론 보안산업에 대한 꾸준한 투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 이사=당연히 보안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보안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고객들이 이용하기 불편해 집니다. 보안에 대한 지나친 투자로 낭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상업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해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안시스템을 해킹하기 위해서 100원이 들어 가는데 해킹 후에 90원밖에 건질 수 없다면 누구도 해킹을 시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안에 대한 문제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적정한 보안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교수= 위험수준에 맞는 보안이 필요합니다. 교통카드와 같은 소액결제시스템에 최고 수준의 보안기능을 탑재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만약 교통카드의 사용처가 급격히 확대돼, 편의점이나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 보안을 강화해야 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안을 강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신용카드의 보안문제가 가장 시급합니다. 빠른 시일 안에 훨씬 더 강화된 보안기준이 적용돼야 합니다. ▲강 교수= 앞으로의 결제수단은 보다 `개인화` 돼야 한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현재까지는 결제 수단이 너무 획일적입니다. 모두 신용카드나 현금으로만 결제하다 보니 범죄에도 쉽게 노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마다 결제수단의 외형이 다르다면 이런 고민은 사라지게 됩니다. A라는 사람은 결제정보를 담은 IC칩을 시계에 부착해 결제하고 B라는 사람은 휴대폰, C라는 사람은 PDA로 결제하게 된다면 위ㆍ변조나 도난의 위험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정 이사=강 교수님의 생각은 이미 현실화 돼 가고 있습니다. 이미 인터넷 중심의 E-커머스와 휴대폰을 이용한 M-커머스, TV를 이용한 T-커머스가 개발돼 운영되고 있고, 최첨단 기술로 목소리를 이용한 V-커머스도 곧 상용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모든 결제행위가 가능한 시대가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스마트카드가 시계와 휴대폰 등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등 결제수단의 개인화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강 교수= 통신회사가 모바일 결제를 통해 금융서비스업을 시작하는 등 결제혁명이 가속화 되면서 업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에 계류중인 전자금융거래법에는 각 업종별 영역을 어느 정도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예금ㆍ대출 업무와 신용카드업은 은행과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들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통신사와 같은 다른 업종의 회사들은 전자금융업을 하더라도 중개업무만 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통신사 등이 직접 금융업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카드사와 은행이 영업을 했는데도 지금 연체율 문제가 심각한데 통신사가 카드 영업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또 청소년들의 이용률이 높은 통신사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신용불량자 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업무영역이 다소 겹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 이사= 미국에서도 통신사들이 한때 카드시장으로 앞 다투어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의 거대 통신회사 AT&T가 몇 년전에 카드 부문에서 손을 털고 나오는 것으로 마감했습니다. 통신사들이 지불ㆍ결제시장에 뛰어들려고 카드업무를 하려고 하지만 여신과 신용관리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져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추세도 다시 금융업무는 금융기관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조 국장=전자화폐 발행 수수료나 결제 수수료가 고객들에게 오히려 비용으로 전가된다는 지적도 있고, 반대로 전자화폐의 이용이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결제혁명의 경제적 혜택에 대한 논란이 쉽게 정리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기술의 발전은 비용의 감소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강 교수=신용카드의 경우 은행 예금이 충분한 사람이 카드로 결제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빚을 내 사용할 때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외상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의 연체율이 크게 올라가 현금서비스 이자율이 인상되는 것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 신용카드 수수료가 3%에 이르다 보니 이 가격이 물품의 원가를 높이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자결제 수수료 부문에 대해서는 앞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조 국장= 결국 신용카드 보다 수수료율이 저렴한 결제수단이 시급히 정착돼야 합니다. 직불카드 수수료는 1% 수준입니다. 앞으로 활성화되면 수수료율은 더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각 연구소의 자료만 봐도 신용카드를 이용해 발생되는 수수료는 결국 가격에 반영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저렴한 지급결제 수단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정 이사=바로 이 문제 때문에 호주 중앙은행이 카드결제를 받느냐 마느냐 여부를 가맹점들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전자결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거래의 투명성 확보라는 데 있습니다. 투명한 거래와 회계처리, 공평과세로 인한 사회적비용의 감소가 이 같은 가격 부담보다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강 교수=국세청에 문의해본 결과 신용카드 사용으로 지난 2002년 개인사업자 부문에서만 3조원의 세금이 더 걷혔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자결제의 효용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있습니다. 직불카드가 활성화되고 다른 전자화폐의 이용도가 높아지면 이 같은 사회적 비용감소 효과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정 이사=-정부차원에서 전자결제의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용카드가 활성화된 이유는 바로 세제혜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카드결제를 한 거죠. 신용카드 활성화에는 추가적으로 인프라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직불카드나 스마트카드 등의 다른 결제수단은 여전히 인프라가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차세대 결제수단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인프라 관련 업체들에게도 각종 혜택을 줘야합니다. 자동차에 대한 세제혜택을 아무리 열심히 주더라도 도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면 자동차가 굴러갈 도로가 부족해집니다. 결과적으로 자동차는 안 팔리죠. ▲조 국장=전자금융거래법은 만들어졌지만 전자결제산업육성법은 아직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규제하는 법은 만들어졌지만 이를 활성화시킬 육성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산업계의 활발한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육성법의 제정도 한 번쯤 고려해봐야 할 과제입니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이 국내 업체들과 제휴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선진국들을 제치고 앞서가는 업종이 없습니다. 정부의 지속적인 육성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강 교수=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정부를 설득할 필요가 있어요. 기술개발을 하는데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정부에 끊임없이 인식시켜 줘야 하는 것이지요. 정보통신분야는 기술의 전환속도가 빠릅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민간이 주도하고 여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뒷받침 하는 모습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리=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