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해양플랜트 부가가치 살리자] <상> 도약의 핵심은 설계

세계 1위지만 설계는 외주… 외국업체와 제휴 기술력 높여야<br>기자재 국산화율 20% 불과… 주요 부품은 외국업체가 독점<br>수주시장서 조선사 파워 커져 원천기술 확보할 기회 찾아와<br>기술 전수로 자립도 키우고 엔지니어링 역량 업그레이드

윤상직(오른쪽 두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8일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해양플랜트 산업 발전방안 간담회에 참석한 조선 업계 대표 및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는 2017년까지 해양플랜트 분야에 민관 합작으로 총 9,000억원을 투입해 1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내용의 해양플랜트 산업 발전방안을 공개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18일 거제도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에 다다르자 총 460만㎡에 달하는 거대한 야드가 선박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아파트 수십층 높이의 900톤급 골리앗 크레인 옆으로는 조선시장의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꼽히는 해양플랜트들이 잇따라 눈에 들어왔다. 드릴십, 부유식생산저장시설(FPSO) 등 현재 옥포조선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해양플랜트만도 무려 10여척에 이른다.

석유 가스 시추ㆍ생산 장비를 뜻하는 해양플랜트는 선박을 제치고 우리 조선업의 기둥으로 떠올랐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전체 수주금액 가운데 해양플랜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70~80%에 이른다. 국내 조선 3사의 상반기 세계 해양플랜트 수주 점유율은 39.5%로 세계 1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선업의 캐시플로인 해양플랜트에서 우리 기술과 부품이 사용되는 범주는 그리 크지 않다. 기자재 국산화율은 20%대 초반에 머물고 있고 핵심 설계는 대부분 외국 전문업체가 수행한다. 외국업체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사실상 몸통만 만들고 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정부가 18일 또다시 해양플랜트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든 극복해 해양플랜트의 부가가치를 최대한 살려보자는 취지다.

◇해양플랜트의 '머리', 설계기술이 없다=국내 조선소의 주력 해양플랜트 중 하나인 드릴십은 전체 선가(5억~6억달러)의 30%가 넘는 드릴링 시스템을 노르웨이의 NOVㆍAKMH 두 개 회사에 대부분 맡기고 있다. 이보다 가격이 몇 배는 비싼 생산설비 FPSO도 마찬가지다. 선체는 우리가 거의 완벽히 건조하지만 핵심 시스템인 톱사이드는 대부분 외국 업체들이 설계한다.


문제는 설계기술을 외국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다 보니 기자재 역시 외국업체들에 선택권이 있다는 점이다. 배재류 대우조선해양 이사는 "국산 기자재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핵심 시스템 설계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이 최대 약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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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해양 유전이 없는 우리나라는 유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설계기술 확보가 더욱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시장에서 커지는 조선사 파워… 기회 놓치지 말아야=하지만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인식이 최근 조선 업계에 퍼지고 있다. 수주시장에서 조선사의 파워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오일 메이저들은 해양플랜트를 발주하면서 설계업체를 사실상 지정해왔다. 우리조선사들은 전체 플랜트를 건조하면서도 설계에 대한 아무 권한이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외국 설계업체들이 납기 지연, 오작동 등의 사고를 일으키며 발주사의 분위기도 전환됐다. 배 이사는 "발주사들이 이제 국내 조선사가 알아서 설계회사를 선정하고 납기만 맞추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 조선사들 입장에서는 원천 설계기술을 확보하기가 좀 더 용이해진 상황이다.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 국내 설계 능력을 키우고 이에 발맞춰 우리 중소기업 중심으로 기자재를 최대한 국산화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다.

◇외국 설계 회사 국내 유치, 기술 국내로 전수해야=정부는 이에 따라 해양플랜트 고급 설계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지원을 늘리고 있다. 현재 1개 밖에 없는 엔지니어링 특성화 대학원을 2020년까지 10개로 늘리고 해양플랜트 특성화 대학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맞춤형 인재확보를 위해 서울대와 조선 3사 간 채용조건형 해양플랜트 협동과정도 개설했다.

하지만 이 같은 중장기 인력양성 계획을 당장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조선 업계와 학계 등에서는 외국 해양플랜트 전문 설계회사를 파격적인 혜택을 줘서라도 부산ㆍ거제 등에 유치해 설계 기술이 국내에 자연스럽게 전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설계회사가 국내에 상주할 경우 자연스럽게 국산 기자재의 사용 실적도 늘어날 수 있다"며 "정부가 대학원 등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전문 인력 양성도 외국 설계인력이 국내에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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