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1월8일, 샌프란시스코. 육군대령 정복을 입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 빈소에는 시민 1만여명이 찾아왔고 장례행렬에는 3만여명이 몰렸다. 묘지의 비석에는 ‘미합중국 황제이며 멕시코의 보호자, 노턴 1세(1819~1880)’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미국의 황제라니. 가당치 않은 말 같지만 그는 실존인물이다. 등장은 1859년. 자신을 ‘미합중국 황제 노턴 1세’라고 주장한 40대 남자는 신문에 소개된 후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다. 부패를 이유로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의회를 해산했을 때는 갈채를 받았다. 시민들은 고개를 조아렸다. 식비며 열차 운임도 모두 무료였다. 황제가 방문했다는 사실이 홍보용 재료였으니까. 노턴 1세는 권력도 휘둘렀다. 증기선 무임승선을 거부 당한 후 ‘운행을 금지한다’는 칙령을 내렸을 때 시민들의 항의를 받은 기선회사는 자비를 구하며 황금빛 평생 무료이용권을 바쳤다. 예복이 남루해지자 시 의회는 특별 결의로 황실 의복 예산을 짰다. 황제는 교단 간 질시를 피하기 위해 교회도 돌아가며 다녔다. 그가 발행한 소액 지폐와 채권은 요즘도 애호가들의 수집 대상이다. 나폴레옹 3세의 동생이니 빅토리아 여왕의 정혼자였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는 몰락한 상인. 영국에서 태어나 30세 때 미국에 들어와 유산 4만달러를 25만달러까지 불린 후 투기로 재산과 정신을 잃고 사라졌다가 ‘황제’라고 주장하며 재등장한 사람이다. 권력에 대한 조소와 ‘괴짜’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황제 노턴 1세’를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글쎄다. 신문의 부고 기사가 답을 대신해준다. ‘노턴 황제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수탈하지도, 추방하지도 않았다.’ 노턴 2세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가끔 출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