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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놓인 우리나라 통상 정책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 통상 전문가들은 통상환경 변화를 읽어내면서 기존의 협상 틀을 과감하게 바꿔나갈 수 있는 유연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주역인 황두연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FTA라고 하면 보통 무역장벽 완화에만 중점을 두기 마련인데 앞으로는 투자를 확실히 늘리고 서비스 교역을 늘리는 식의 광대역 무역협정을 맺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동남아나 중남미·아프리카 등에서 투자와 서비스 교역을 늘려 먹거리를 찾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국익을 만들고 차별화를 위해서는 신흥국이 원하는 우리의 경제개발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통상환경은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다자간 무역협정 등 3개의 축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들 축에 모두 발을 담그고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한국은 2~3년 전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와 관련해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라는 식의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면서 "그릇된 판단은 결국 전략수정도 쉽지 않고 보이지 않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통상 전략을 빠르게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신통상 로드맵'도 꾸준히 수정해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통상환경은 미국·중국·일본·유럽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바뀌면서 불투명해지고 있다"면서 "이런 때일수록 통상정책의 탄력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10년 또는 5년 단위의 통상 정책을 세우고 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변국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꿔나갈 수 있는 정책 틀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거대 경제권의 FTA가 서로 경합하는 상황인 만큼 이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한중 FTA와 TPP가 서로 경쟁하면서 따로 협상을 진행했을 때 안 될 것 같은 사안이 풀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우리 정부와 산업계도 이를 인식하고 대응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내부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처 이기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황 전 본부장은 "우리 통상 거버넌스는 여러 체제로 바뀌어 운영돼오면서 각 부처 간의 힘겨루기가 극심했고 갈등도 많았다"며 "산업부로 통상 주도권이 넘어오기는 했지만 어느 부처가 이를 맡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국익을 찾아보겠다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