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3일] 월터 배젓


위기가 왜 일어날까. 주기적 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 탓이라는 마르크스의 좌파경제학을 제외하면 크게 시장실패론과 정부실패론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특이한 대목은 상반된 시각의 두 이론이 월터 배젓(Walter Bagehot)이라는 동일한 출발점을 갖고 있다는 점. 위기에 대한 연구가 배젓부터 본격화했다는 얘기다. 가장 저평가된 경제학자로 꼽히는 배젓은 은행 가문 출신. 1826년 2월3일 랭포트에서 태어나 런던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소망하던 문필가 대신 가업을 맡아 7년간 은행 실무를 익혔다. 경제학 지식과 은행 경험, 문장력이라는 3박자는 장인이 창간한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꽃피었다. 배젓이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기는 ‘혼돈의 시대’. 초고속 성장이 차츰 한계를 보이며 공황이 반복되고 전통적 사고방식과 다윈의 종의 기원, 밀의 자유론 등 새로운 지적 탐구가 충돌하던 전환기에 배젓은 명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한창때는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각료들에게만 제출되는 경제 관련 보고서를 열람하고 정책방향을 조언해 ‘숨은 재무장관’으로도 불렸다. 정치권력의 권위와 권한 분리를 주장한 ‘영국의 국가구조(1867)’를 펴내는 등 정치이론가로도 활약한 그의 대표작은 1873년 출간한 ‘롬바드 스트리트’. 중앙은행의 기능 중 하나인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라는 용어도 여기서 처음 쓰였다. 위기시 대응방법을 담은 이 책은 각국의 중앙은행 제도의 성립과 발전으로 이어졌다. 한국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돈을 주는 대신 고금리를 강요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에도 고금리로 무제한 신용(돈)을 풀라는 배젓의 처방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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