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저금리에 엔화를 조달해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부활하고 있어 엔화 가치 급락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융위기 이후 크게 줄었다가 일본중앙은행(BOJ)이 지난 4월 금융완화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다시 활성화되는 상태다.
29일(현지시간) 미 경제전문방송 CNBC에 따르면 씨티그룹의 토드 엘머 외환투자전략가는 "강한 경기회복세를 보이는 미국으로 돈이 몰려 그동안 엔화와 함께 캐리 트레이드의 주요 조달화폐로 평가 받던 달러가 강세를 보일 수 있고 이에 따라 엔화 홀로 캐리 트레이드 조달화폐로 급부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에 따라 엔화를 매도해 위험자산을 사는 투자자가 늘어나 엔화 가치는 추가로 하락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거나 환 가치가 낮은 국가의 화폐를 투자자들이 낮은 비용에 조달해 고금리의 위험자산에 투자, 그 차익을 챙기는 거래를 말한다.
2004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 엔캐리 트레이드가 전성기를 맞아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20% 하락하기도 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위험자산 회피 및 안전자산 선호 심리 확산으로 엔캐리 트레이드는 막을 내렸다.
이후 미국과 유럽·일본 중앙은행이 모두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해 최근에는 달러·유로·엔 모두 캐리 트레이드 조달화폐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실시해 미국 시중금리가 상승할 조짐을 보이고 유럽도 일본만큼 화끈한 양적완화를 하고 있지 않아 엔캐리 트레이드가 다시 빛을 발할 기미를 나타내고 있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투자할 수 있는 위험자산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엔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엘머 투자전략가는 "내년 1·4분기 엔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히 진행되다 일본의 소비세가 인상되는 2·4분기에는 금융시장 혼란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주춤해질 수 있다"며 "이후 BOJ가 추가 양적완화를 단행할 것으로 보여 하반기에는 다시 엔캐리 트레이드가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1·4분기 엔화가치가 달러당 107엔까지 하락한 후 2·4분기 조정을 거칠 것이고 연말에는 최대 110엔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외에도 해외 투자은행(IB)들 대다수가 엔화 약세를 점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세계 73개 IB들의 평균 달러 대비 엔화 가치 전망은 내년 1·4분기에 104엔, 2·4분기 105엔, 3·4분기 107엔, 4·4분기 109엔이다. 크레디트스위스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말까지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120엔까지 추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테이퍼링으로 글로벌 머니무브는 가속화하고 있다. 일단 가장 큰 흐름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로 지목되던 테이퍼링이 오히려 안전자산 외면 및 위험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하는 '테이퍼링의 역설'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종합 주가지수 격인 MSCI월드인덱스는 27일 1,654.16으로 2007년 10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사상 최고치(1,682)에도 근접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유로화 표시 정크본드지수도 27일 150.499로 지수 출범(2010년 1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외에 안전자산으로 평가 받는 독일·프랑스·네덜란드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27일 0.1%포인트 내외의 가파른 상승(가격 하락)세를 보였다.
또 신흥국에서는 정치·경제 펀더멘털이 흔들리는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이는 반면 대다수 국가는 안정세를 찾는 등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대형 부동산 개발 비리 스캔들이 터진 터키에서는 리라화 가치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정정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태국도 환 가치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보이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의 가치 추락도 계속되고 있다.
반면 지난 여름 연준의 테이퍼링 가능성에 크게 휘둘렸던 인도·인도네시아의 환 가치와 주가는 18일 연준의 테이퍼링 결정 이후 오히려 상승했으며 이외에 브라질·러시아·멕시코·필리핀·말레이시아 등도 혼조세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