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전문가들이 본 한국경제 현주소] "디플레보다 디스인플레 근접… 총수요 확대·구조개혁 병행해야"

'저성장→저물가→저성장' 고리 고착화 우려

정책 처방 실기 땐 일본식 장기불황 올수도

추석 특수·부동산 훈풍 착시효과도 경계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한국 경제는 디플레이션 상황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에 더 방점을 찍었다. 다만 "그렇다고 방치하면 (일본식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전했다. '저성장→저물가→저성장'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총수요를 끌어올리는 처방을 내놓고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도 병행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부총리의 경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말 "한국 경제가 (일본식) 디플레이션의 초입에 와 있다"고 밝히면서 이른바 'D의 공포'를 확산시켰다. 그의 발언을 놓고 경기 낙관론과 비관론은 교차한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우리나라는 정확하게 일본의 1992~1993년 상황에 봉착해 있다"면서 "최 경제부총리가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는 진단은 정확하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지난 1992년(물가 상승률 1.7%, 성장률 0.8%)을 시작으로 장기 저성장의 신호가 감지됐는데 2년 뒤인 1994년 물가 상승률은 0.7%, 성장률은 0.9%를 보였다. 이후 저성장·저물가의 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 이어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자산 디플레이션만 놓고 보면 부동산 가격은 그런 징후(디플레이션)가 다소 보이는 만큼 이를 풀지 못하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디플레이션으로 보기에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저성장이 저물가를 초래하는 단계일 뿐 저물가가 저성장까지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일본의 1990년대 초반과 여러 측면에서 많이 닮기는 했지만 일본보다 안 좋은 정도는 덜하다"고 말했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물가와 성장세가 한 단계 낮아진 것은 맞다. 고령화에 따른 노후대비, 가계부채 등 구조적인 요인으로 수요도 위축돼 있다"면서 "그렇다고 디플레이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 역시 "2·4분기 GDP 디플레이터가 0%대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 2% 후반대고 근원인플레이션 역시 2%대"라면서 "여러 지표를 봐도 아직은 (디플레이션 초입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디플레이션보다는 '디스인플레이션'에 더 근접=현 상황이 디플레이션보다는 디스인플레이션에 더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디스인플레이션은 정부의 고물가 억제정책(협의의 개념)을 뜻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는 물가가 양(+)의 범위 내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뜻한다. 정구현 KAIST 경영대 교수는 "소비자물가지수가 2년 가까이 1%대다. 중앙은행의 물가목표치에도 2년 이상 미달하고 있다. 현재는 디스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경제활동이 위축된 것이 주된 이유다. 정 교수는 "수요가 약하니까 기업들이 물건 값을 깎고 있고 이것이 저물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원자재 가격의 안정, 원화 절상으로 인한 수입물가 하락 등도 저물가의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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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시 디플레이션에 빠지기 전에 디스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바 있다. 1992년 1.7%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5년 -0.1%까지 하락했으며 1997년 1.9%로 반짝 상승하기도 했으나 결국 1999년부터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불안신호 곳곳 감지…총수요 확대, 구조개혁 등 동시대응=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소비심리는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하다. 추석 백화점과 할인점의 매출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추세적으로 이어질지 미지수인데다 세월호 참사의 반사 작용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환율도 변수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깜짝 금리인하로 유럽 자금이 국내로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원화 강세 기조가 강해져 경기회복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심리는 회복됐지만 기업 부문에서는 확실히 경기의 하방 위험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미 2·4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0.4%)를 기록했다. 8월 수출은 소폭 줄어든 가운데 대중국 수출은 -3.8%로 4개월째 마이너스 흐름을 이어갔다. 여기에다 제조업 체감경기는 세월호 사고 이후 넉 달 연속 악화했다.

정 교수는 "일본의 실패는 결국 구조개편은 하지 않은 채 총수요만 늘리려는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라면서 "재정팽창·금리인하 등의 대책 이외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구조개혁은 진척이 없는데 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만 띄우는 데 치우치면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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