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집들은 올망졸망하다. 그것들을 모두 합쳐 봐야 30집이 넘지 않는다. 흑은 하변만으로도 30집에 가까우니 차이가 나도 이미 크게 나 있다. 서봉수9단이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떠난 이유를 알 것 같다. 박영훈도 자신의 비세를 잘 알고 있다. 시간을 뭉텅뭉텅 쓰며 비책을 강구해 보지만 방법은 도무지 발견되지 않는다. 백4로 슬쩍 비틀어 본다. 그리고 8로 슬그머니 찔러 본다.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암중모색을 해본 것인데 형편이 넉넉한 구리가 그만 실수를 했다. 흑9로 물러난 이 수. 구리답지 않는 지나친 몸조심이었다. 백10으로 쑥 고개를 내밀자 이 한 수로 중원에 대한 발언권이 갑자기 세어졌다. “역시 사두입니다. 뱀대가리. 흑은 이 수(백10)를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거의 말이 없던 해설자 강만우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다소나마 박영훈에게도 서광이 비친다는 얘기. 흑9로는 무조건 참고도1의 흑1에 막았어야 했다. 백2에는 흑3의 이단젖힘으로 대처한다. 백은 8로 따내게 될 터인데 흑9 이하 19로 몰아치면 백은 활로 찾기에 급급해야 한다. 살아가기는 하겠지만 흑승이 굳어질 것이다. 참고도2의 백8로 두면 백이 흑 3점을 잡을 수는 있지만 흑17을 당하면 바둑은 역시 여유있는 흑승일 것이다. 구리의 흑9로 인하여 바둑은 일단 시끄럽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