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반도체경기 V자형 아닌 'L자형'

반도체경기는 본래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것이특징이지만 지난 1년간의 불황은 그 속도와 깊이, 기간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것이다. 세계 3위인 한국의 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대만, 일본, 한국, 실리콘밸리 어느 곳을 막론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는 반도체경기가 연내에 수요증가로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가격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아 'V자형'보다는 'L자형'이 될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세계 반도체산업의 판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반도체산업은 저성장, 저이윤, 심한 경기변동으로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 철강, 제지산업 등과 같은 자본집약적 산업을 점점 더 닮아가고 있으며 자금이 부족한 하이닉스의 경우 최신 반도체장비에 대한 투자를 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밀려날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반도체의 불황은 공급과잉 즉 제조업체들의 생산설비에 대한 과투자로 가격이 하락함으로써 초래되는 것이 정상이나 이번에는 공급과잉과 수요감소가 겹쳤으며 이것이 이번 불황이 유난히 심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수요감소의 원인은 지난 99년부터 2000년초까지 Y2K에 대한 대비, 닷컴기업들의 거의 무제한적인 투자, 인터넷 초기의 열풍 등이 겹치면서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판매증가가 이뤄졌고 세계경기의 예상치 못한 급격한 하강국면이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공급과잉과 수요감소의 동시발생은 거의 모든 수요분야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고 신문은 말했다. 세계 PC판매량이 지난 2.4분기중 15년만에 처음으로 감소했고 PC용 반도체제조업체들의 매출액은 2000년 500억달러에서 올해 380억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한때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던 무선통신산업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 연초 핸드세트의 판매량이 6억개를 돌파할 것인가가 논쟁의 대상이었으나 4억개가 팔리는데 그쳤고 2.4분기에는 휴대폰 판매가 처음으로 작년동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했다. 통신인프라업계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차입금이 너무 많아 투자할 능력이 없는 상태이며 과투자가 해소되려면 1년은 걸릴 것으로 분석했다. 수요공급의 불균형과 함께 대부분 반도체의 가격도 폭락했다. 지난 5월 D램 반도체의 출하량은 작년동기 대비 62%가 감소했다. 반도체 업계는 가격기준으로는 출하량이 종종 감소했었지만 물량기준으로 감소한 적은 없는데 이번에는 수요가 너무 나빠 물량마저 감소했다. 3.4분기에도 매출액이 감소한다면 연속 4분기째로 기록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건 스탠리 딘위터와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은 4.4분기부터 연속적인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재고가 정상수준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새로운 상품인 윈도XP와 인텔의 펜티엄4 판촉이 PC수요를 밀어올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문은 그러나 이럴 경우에도 회복세는 'V자'형이 아니라 'L자'형이 될 것이라 고 말했다. 수요는 증가해도 가격이 당분간 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초기에는 신규수주가 플래시메모리칩이나 로직칩과 같은 상품들에서 이뤄질 것이며 이 분야는 경쟁이 심해 바이어들이 가격을 후려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처리속도가 더 빠른 칩에 대한 수요부진까지 겹치는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현재의 PC가 기능상 대부분의 사용자들에게 문제가 없으며 사용자들은 처리 속도가 더 빠른 프로세서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는 기술혁신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2기가헤르츠짜리 펜티엄4 칩을 출시하고 1.8기가헤르츠짜리 칩의 가격을 50% 이상 낮췄다. 현재 대부분의 응용프로그램들은 1기가헤르츠로 충분하며 PC의 문제는 처리속도가 아니라 인터넷 접속이 늦다는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연내 반도체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업계전체는 이번 불황을 통해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겪을 것이라고 신문은 말했다. 지난달 일본의 도시바, 히타치, NEC가 3만7천500명을 감원했고 NEC는 D램분야에서 완전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시사했다. 도시바는 일본내 생산라인을 폐쇄했으며 독일의 인피네온 및 한국의 삼성과 D램 및 플래시메모리 사업 통합을 협상중이다. 모토로라의 반도체사업 진출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이번 불황을 숨겨진 축복이라고 장담하던 대만의 유나이티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도 올해 수백명을 감원하고 손실과 가동률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결국 자본력 싸움을 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따라서 자금이 부족한 하이닉스는 최신 반도체장비에 투자할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시장에서 밀려날수도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반도체업계는 고성장과 기술혁신의 선두에 있다고 자랑해왔지만 현재로서는 저성장, 저이윤, 경기급변 등에 시달리고 있는 석유화학, 철강, 제지 등 자본집약산업들과 점점 더 닮아 보인다고 신문은 말했다. (런던=연합뉴스) 김창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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