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사가 17일 올해 업계 최초로 무분규 노사화합을 선언, 노동계에 메가톤급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IMF(국제통화기금)사태 2년을 맞아 어느 때보다 노사분규가 경제회생의 최대 걸림돌로 예상되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으로 경제회생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아노조가 고용보장 및 임금문제를 일괄적으로 타결짓고 무분규로 경영정상화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한 것은 단순사업장의 노사협상 타결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노동계에서 기아노조가 강성노조의 대명사처럼 여겼던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사업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무분규 노사화합을 선언한 사업장은 그동안 현대중공업 등 여러 기업이 있으나 기아노조가 노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단순히 일개 사업장의 무분규선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기아노조는 지난 94년이후 매년 15일 이상 파업을 했으며 부도직전인 96년말에도 노동법 반대 투쟁을 하며 20일이상 파업을 벌일 정도로 민주노총산하의 가장 열성적인 노조로 유명하다.
특히 민주노총이 노사정을 탈퇴하고 4월 공기업의 구조조정 등 대규모 춘투를 앞둔 시점에서 기아노조의 이번 선언은 노동계의 운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아노조는 고용보장이라는 과실을 회사측으로부터 따내는 대신 무분규를 선언하는 「윈-윈 전략」을 택한 셈이다. 즉 노조가 파업이라는 명분보다는 회사가 살아야 고용도 보장된다는 실리를 챙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아는 이번 파업기간중에도 주문이 밀려 있는 카니발라인에서 휴일특근을 했으며 정상적인 차량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하는 등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도가 1%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했다. 조합원들사이에 이제는 더 이상 파업으로 회사를 망쳐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됐던 것이다.
김태기교수(단국대)는 『금속노련의 공동투쟁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며 『민주노총의 전위대 역할을 했던 기아의 노선탈퇴는 민주노총의 입지를 크게 좁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30대그룹 사업장중에서 무분규를 선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자동차업계 등 산업전반에 걸쳐 노사안정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는 실업자가 200만명을 넘어서 어느해보다 노사분규가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이런 시점에서 기아노조의 무분규선언은 노사협상에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금속노련은 이날 긴급회의를 갖고 기아의 무분규선언을 향후 투쟁일정에 찬물을 끼얹는 배신행위로 보고 고종환(高鍾煥)기아노조위원장을 징계할 방침이며 민주노총도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금속노련이 25일 4시간 시한부파업, 민주노총은 27일 서울·울산 등 전국각지에서 10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기아의 무분규선언으로 인해 집회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련이 아무리 상급단체라 하더라도 단위사업장의 합의사항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즉 단위사업장들이 개별적으로 노사합의를 원만하게 도출할 경우 상급단체가 연대파업을 벌일 명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이자 잦은 노사분규로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기아노조가 무분규정신의 노사화합을 천명한 것은 산업평화분위기 조성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빅딜사업장과 현대·대우자동차 등 울산·마산 창원지역, 광주지역의 분규조짐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노사협상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가 IMF위기를 탈출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S&P는 한국이 추가로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노사분규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상반기중 무분규 노사화합을 선언하는 사업장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올해가 노사관계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해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했다.【연성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