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경제체질 강화로 희망 찾자

김광두<서강대 교수·경제학과>

올해도 우리 국민들의 경제생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연간 경제성장률은 4% 이하로, 특히 상반기에는 성장률을 2%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정부 당국자들은 초조해지게 마련이다. 앞뒤를 가리며 긴 안목을 가질 여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마약과 같은 정책수단을 동원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 외환위기의 병균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99년 하반기부터 당시의 정부가 택했던 무리한 경기부양책은 지금까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경제체질을 개선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놓쳤음은 물론이고 새로운 병균이 경제의 흐름 속에 생성됐다. 2002년 이래 부동산가격 폭등, 신용불량자와 가계부채의 급증, 신용카드회사들의 붕괴위기, 벤처기업들의 경영부실 심화 등은 새롭게 뿌리를 내린 암 인자들이다. 이러한 병균의 침투로 우리 경제의 혈액순환은 건강하게 이뤄지지 못했고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에서 투자보다는 투기가 성행하는 고혈압 경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여기에서 우리는 80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79년의 5차 석유파동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한 정치불안 등으로 80년의 봄은 정치인에게는 봄이었지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혹한의 겨울이었다. 80년의 경제성장률은 -2.7%, 실업률은 5.2%, 물가상승률은 29%, 경상수지는 53억달러의 적자였다. 높은 소비자물가의 상승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소비도 크게 위축됐고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 증대로 민간 설비투자도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당시의 정부가 택한 경제정책은 놀랍게도 안정정책이었다. 통화와 재정의 긴축을 통한 경제체질의 강화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인기 없는 정책 기조를 택했던 것이다. 70년대 연간 25% 수준의 증가율을 보여줬던 통화량 증가율을 7~15%로 낮췄고 유사한 증가율을 나타냈던 재정지출도 제로ㆍ베이스 예산방식 도입을 통한 긴축으로 10% 수준으로 감소시켰다. 이러한 인기 없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권위주의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 당국이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서 단기적 고통과 비인기를 감수했음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긴축재정ㆍ금융정책으로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체질 강화를 위해서 스스로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의 노력을 했고 부동산가격의 안정 등으로 3% 수준의 물가 상승률이 정착되는 여건이 형성됐다. 80년대 전반 안정화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기업체질의 강화와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80년대 후반 3저 현상 등 호전된 국제경제 환경을 충분히 활용해 우리 경제는 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80년대 전반의 고통이 80년대 후반의 즐거움으로 바뀐 것이다. 92년의 경제침체를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돈 뿌리기 작전으로 대응한 93년의 경제정책이 97년 외환위기로 이어졌고, 2000년 총선을 의식한 99년 이후의 팽창정책이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를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80년대 전반의 안정정책을 뒷받침한 경제체질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 사고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독재정권과 민주정권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경제라는 생물의 기본 특성은 어떤 정권하에서나 마찬가지다. 체질이 약하면 경제는 병에 걸리는 것이다. 특히 세계화가 크게 진전된 올해의 상황은 80년대 전반보다 더욱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돈을 뿌리는 정책은 마약과 같다. 마약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킬 수는 없다. 일시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정부와 기업 모두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모아 희망을 찾는 노력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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