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섭·남영기씨 등 200여명 활약/대부분이 무역회사 지점출신/초기 한국상품 수입판매 주력/귀속계기 심천 등 진출 모색홍콩은 한국이 지난 95년부터 연간 1백억달러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올리는 「황금알 낳는 거위」다. 이처럼 막대한 대홍콩 무역흑자의 주역은 중국이나 홍콩, 동남아에 한국제품을 판매하는 홍콩의 한인교민들이다. 홍콩상공회 성석주 회장은 『지난 92년 한중수교도 중국을 넘나들면서 한국제품을 뿌리고 한국의 경제발전을 널리 알린 홍콩교민들이 없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성상공회장은 『이번 홍콩반환으로 한인사업가들의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사업품목을 다양화해 다시 한번 한국인의 기개를 자랑하려는 사업가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홍콩의 한인은 대략 8천명 안팎. 이중 홍콩비자를 갖고 있는 사업가는 2백여명정도. 또 홍콩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은 5백여개 업체에 달하는데 삼성물산 등 7개 종합상사를 포함한 무역회사가 대부분이고 한국은행 등 은행이 28개, 제2금융권은 대우증권 등 증권사 22개사, 종금사 7개사, 투신사 3개, 보험사 3개 등이 진출해 있다.
홍콩에 한인들이 본격적으로 건너온 것은 지난 60년대 중반께. 중국 공산당이 중국본토를 통일한 직후 국민당 무리를 따라 건너온 독립운동가 출신의 교민도 있었으나 이는 극히 소수였다.
홍콩교민은 6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월남전, 중동, 중국 등 10년마다 터지는 특수를 타고 그 숫자가 크게 불어 지금은 9천명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콩한인회 현경섭회장은 『초기에는 돼지 등을 한국으로부터 수입, 홍콩에 파는 사업에서 차츰 목재, 직물사업 등으로 바뀌었다』며 『최근에는 중국 심천 등 주강삼각주내 제조업에 관심을 갖는 한인사업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민들중 한인사업가는 대략 2백명선으로 상사등 무역회사의 홍콩지점 출신이 대부분이다.
홍콩에서 연간 1천만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한인사업가는 현 한인회 회장, 남영기 관환공사, 이래건 동우해운공사, 장규찬 고려공사, 김일고 입성무역, 성백홍 백륭공사, 김재강 호신무역공사, 변호영 화랑스포츠전문점, 박세원 신화기업공사, 박병원 머천다이스 테스팅 연구소(MTL) 사장 등이 꼽힌다.
39대 한인회장인 현 회장은 섬유 및 의류, 농기계를 수출하는 향기실업 등 3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선친이 제2대 조달청장을 지낸 현근선생이며 자신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69년부터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광역발전공사를 운영하고 있는 성상공회장은 90년대초 수출 4천만달러를 이룬 공로로 우리정부로부터 철탑산업훈장을 받은 유공자다.
올림포스전자를 다니다 60년대 후반 이 곳에 건너와 전자손목시계를 시작으로 카라디오, 스테레오 등 전자관련 제품의 중계무역에 30여년간을 보냈다.
성회장은 『중국시장을 뚫기 위해 당시 조자양 중국총리의 아들까지 만났다』며 『90년대초에는 한국기업들이 물건만 공급해줬다면 1억달러 수출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억을 더듬는다. 그는 요즘들어 중국기업들을 상대로 한 파이낸싱 알선사업을 시작했다.
남영기 사장은 한인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꼽힌다.
지난 80년대초 홍콩지점에 근무하다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아예 눌러앉은 그는 직물원단사업으로 한해 5천만달러 이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거래하던 한국기업이 부도나 적잖은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박병원사장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수출제품의 품질검사를 대행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홍콩내 직원만도 50여명이 넘고 상해, 인도, 싱가포르 등에 지사를 두고 있다. 재미교포인 그는 홀홀단신 홍콩에 건너와 탄탄한 사업기반을 구축했다.
축구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인 변호영씨는 스포츠용품 전문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래건 사장은 중국∼서울간 화물에이전트사업을 하고 있다.
또 새한미디어 고문출신인 장규찬사장은 새한미디어 동남아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홍콩=문주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