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현대차식 근로시간 단축


근로시간 단축이 대세다. 지난달 30일 현대자동차 노사는 45년 전통의 밤샘근무를 없애고 하루 3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에 잠정 합의했다. 합의안은 이달 3일 실시된 노조 조합원 투표에서 가결돼 내년 3월 시행에 들어간다. 가장 대표적인 제조업체이자 장시간 근로의 상징으로 주목 받아온 현대차의 전격적인 근로시간 단축 합의는 관련 업종뿐 아니라 우리 산업 전반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생산량 유지 빅딜로 노사 윈윈


이런 변화의 압력이 정부와 정치권에 의해 촉발된 측면도 있다. 총선과 대선을 치르고 있는 정치권이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하며 장시간 근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 여론을 선도했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선거 구호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며 근로시간 단축은 모든 이들의 관심사항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집에서 투명인간처럼 살아왔던 남성 직장인들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정시 퇴근 직장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워크셰어링 차원에서, 출산촉진 대책의 일환으로, 그리고 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야근 없는 사회가 필요한 때인가 보다.

정부도 지난해부터 발 벗고 나섰고 노사정위원회는 실(實)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다. 일부 행정기관들은 이미 일주일에 하루는 야근 없는 날로 정해 정시 퇴근을 의무화하거나 주말 연장근로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연장근로에 대한 관리 강화나 연차휴가의 의무 사용 등으로 진화하고 있고 정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모두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에 부응하는 변화들이다. 2,200시간에 달하는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을 2,000시간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근로시간을 줄여 새 일자리도 창출하고 삶의 질도 향상시키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이다. 노동계는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재계는 상응하는 임금 삭감을 주장한다. 노사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방법은 생산성 향상뿐이다. 여기에는 추가적인 설비투자도 필요하고 노동 강도의 강화도 수반될 것이다. 근로자가 임금을 양보하거나 기업이 수익을 줄이고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근로시간 단축은 노사의 양보와 타협이 뒷받침돼야 실현된다. 결국 정책이나 공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의 조건에 관한 노사의 타협이 더 중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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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도 현대차 노사의 이번 합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노사가 이해의 균형을 비교적 잘 맞춘 합의라서 다른 사업장에도 모범사례로 기록될 만하고 국가 차원의 사회적 타협에 준거가 될 수도 있다.

국가 차원 대타협 이끌 리더십 절실

타협의 골격은 근로시간을 줄이되 임금과 생산물량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하루 10시간씩 2교대로 움직이던 근무체제를 내년 3월부터 주간 8시간, 야간 9시간으로 재편하지만 기업은 임금을 보장해주고 노동조합은 기존의 생산물량을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지난 2003년 근무제도 개편 논의를 시작한지 10년에 걸친 노사 공동연구와 협상 끝에 이끌어낸 결과다. 국내 최강의 노조답게 파업 수단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회사를 압박했지만 이익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내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요구는 더 확산될 것이다. 문제는 노사갈등을 최소화하며 대타협을 이끌어낼 정치 리더십이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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