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패러다임 시프트] <3부> ③ 제도의 틀 바꾸자

성장·분배 두토끼 잡으려면 대기업·부자 승자독식 구조 깨야<br>근로장려세제 확대해 양극화 갈등 해소 필요<br>중소기업과 성과공유 등 대기업 사회적 투자 유도<br>세제개혁으로 분배 강화… 기부문화 정착 등 병행을


'1% 대 99%'

현재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의 근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호다.


전세계적으로 인간 중심의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그간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일부 대기업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승자독식 구도가 고착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데서 소외된 서민층의 거센 반발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간적 자본주의의 양대 키워드로 '지속 성장'과 '공정한 분배'를 꼽고 있다. 성장과 분배가 균형 잡힌 두 바퀴처럼 제대로 굴러가야 자본주의의 건강한 존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어떤 형태로든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면서 공정한 분배가 동반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속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성장의 과실이 사회 각층에 골고루 전달되는 따뜻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사회 양극화 해소다. 중산층을 육성해 사회통합의 기반을 마련하고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소득의 균등한 분배와 기부 활성화를 위한 세제개편도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양극화 해소 위한 중산층 육성방안 시급=양극화는 모든 사회갈등의 주범이다. 기존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도 소득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데 근본 이유가 있다. 따라서 중산층을 육성하고 빈곤층을 지원해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은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가 안착하기 위한 핵심 과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은 줄어들고 빈곤층은 빠르게 늘고 있다. 월 소득 160만~480만원 수준인 중산층 비율은 2000년 71.7%에서 2010년 67.5%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월 소득 약 160만원 미만인 빈곤층 비율은 9.2%에서 12.5%로 급증했다. 소득 불평등 정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소속된 다른 국가에 비해 심하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간한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의 소득분배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315다. 0과 1 사이 숫자로 표시되는 지니계수가 낮을수록 소득분배가 평등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OECD 평균(0.314)과 비슷했지만 조사 대상 34개국 가운데서는 20위로 중하위권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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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양극화 심화에 따른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근로계층의 빈곤화를 방지하고 일하는 사람이 우대받도록 제도를 개선해 양극화 완화와 경제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 소득 1,700만원 이하의 근로자에 대해 연간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하는 것도 효과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아울러 복지 시스템의 전달체계를 개선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안도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사회적 역할 강화방안 모색=한편 글로벌화와 자동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기업이 성장하면 일자리 창출과 부의 분배라는 낙수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믿음도 점차 설 땅을 잃고 있다. 제도적인 뒷받침을 통해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 교수는 "기본적으로 민간자본인 대기업은 사적 자본에 투자할 뿐 사회적 자본에 투자할 의무는 없었으나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에서는 대기업의 사회적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 모색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방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정책이다.

다만 대기업의 시혜적인 일회성 지원보다는 중소기업 판로 확보나 연구개발(R&D) 지원, 생산성 향상 등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이나 원가절감의 성과를 나눠갖는 성과공유제도 효과적인 동반성장 방안으로 거론된다.

◇소득분배ㆍ기부장려 세제개편도 대안=억만장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지난해 언론 기고를 통해 "나는 내 비서보다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부자들이 혜택 받는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핏과 그의 비서의 세율이 역전된 것은 주식 투자 이익 등 자본소득에 대해 근로소득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미국의 세제 때문이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이른바 '버핏세'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졌다. 구체적으로 경제 왜곡현상을 최소화하는 세제개혁을 통해 소득의 균등한 분배를 달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세제개편 등을 통해 부유층과 기업들의 기부를 장려하는 일도 인간적 자본주의가 안착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세계적 아이콘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지난해 미국 시애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부의 축적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돈을 쌓아두고 재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어왔다"며 "그러나 진정한 재투자는 사회에 대한 공헌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게이츠의 지적처럼 아직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편이라 기부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특히 여전히 개인보다는 기업의 기부 비중이 높다는 점이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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