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한국노총이 e메일을 보내왔다. e메일의 내용은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이 공공기관 직원의 정년을 공무원 정년에 준하는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큰 원칙은 작은 정부, 국민편익 증대이며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민영화ㆍ통폐합, 경영 효율화였다. 이번 정년 연장 합의는 이 같은 원칙과 실천방안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합의 자리에 없던 정부 입장에서도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현재 공기업의 평균 정년은 58세로 민간기업보다 적게는 3년 많게는 5년이 더 길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한나라당이 그보다 훨씬 더 긴 정년을 보장해주기로 합의한 이유는 뭘까.
합의가 이뤄진 14일의 한나라당과 한국노총 간 고위정책협의회로 돌아가보자. 이 자리에서 장석춘 한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은 공공기관을 상대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 정책을 거세게 비판했다.
이에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어떻게 하면 공기업 선진화를 하면서도 한노총의 입장을 살릴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보자”며 노총 달래기에 나섰고 그 결과 공공기관의 정년 연장을 합의하게 됐다. 한국노총과 정책연대 중인 한나라당이 내년의 지방선거를 의식해 80만명의 노조원을 거느리고 있는 한노총의 으름장에 놀란 것이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동향을 보면 청년층의 취업자 감소폭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달에만 청년층의 취업자 감소폭은 전년 동월 대비 11만2,000명에 달한다. 전체 실업자 수는 90만명을 넘어선 지 오래고 1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공공기관의 정년 연장에 합의한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선심성 정책을 내놓으면 그게 표로 바뀌어 돌아올 것으로 믿는 눈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덕분에 올 표보다는 여론의 외면을 받아 갈 표가 훨씬 더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