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현장에서 붉은 띠를 매고 한 손엔 쇠파이프를 다른 한 손은 곧추 세워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
외국인들이 한국사회를 연상할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외국기업의 한국투자를 꺼리는 주요 원인으로 과격한 노동운동을 주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기존의 전투적이고 과격한 노동운동 방식에서 벗어나 중도ㆍ협력적인 노동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대표를 지내며 노동운동에 깊게 관여해온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가을 발표한 글을 통해 “현재의 노동운동은 정당성 및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21세기 한국의 노동운동은 위기를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 어느새 ‘또 다른 가진 소수’의 운동으로 바뀌었다”며 “대기업 정규직 남성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은 오히려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반성했다.
박 연구원은 한국 노동운동이 ‘왕자병 환자’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며 노동운동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는 “이제 노동운동은 이주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 등 주변부노동자를 조직하는 풀뿌리 노동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매년 되풀이 되는 파업과 폭력투쟁의 전면중단을 촉구했다.
한국노총이 최근 산하 조합원 1,1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노조원들의 변화된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이 조사에서 노조원들은 전투적 방식보다는 합법적ㆍ평화적인 방식을 더 선호했으며 사업장 노사관계도 대립적이기보다 협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임금과 고용의 상대적 중요도에 대해 노조원의 61.8%는 고용이 임금보다 더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사업장 노사관계가 협력적이라고 응답한 조합원이 82.5%로 대립적이라고 답한 14.6%를 5배 이상 웃돌았다.
노동운동방식에 대해서는 ‘전투적 방식 유지’는 10.9%에 불과한 반면 ‘투쟁성은 유지하되 유연한 전술 개발’이 39.6%, ‘합법적이고 평화적 방식 강구’가 45.9%로 조사됐다. 노조의 생산성향상 노력에 대해서는 찬성이 41.9%, 보수 및 복지증진과 연계될 경우 찬성이 44.4%나 차지한 반면 반대한다는 의견은 3.6%에 그쳤다.
반면 비정규직 임금개선을 위해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44.9%였으며,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개선을 위해 대기업이 임금을 동결 또는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45.7%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조의 투쟁방식을 바꾸되 기득권 양보에는 아직 상당수가 받아들이고 있지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