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천수답 자본시장 자생력을 키워라] <1> 생사 기로 선 증권사

골든타임 놓치면 끝… 맥쿼리처럼 사업 차별화로 '우물' 벗어나야

글로벌IB 무조건 따라하기보다 특화·전문화

당장 해외진출 힘들면 국내외 가교역할부터

'펀드 FTA' ARFP, 경쟁력 갖출 기회 활용을


자본시장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주식거래대금은 해가 갈수록 줄고 펀드 자금유출이 계속되면서 자본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인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생존의 위기에 몰렸다. 올 상반기에만 1,000여명이 넘는 증권맨이 여의도를 떠난 증권업계는 하반기에도 인력 감축과 지점 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오는 2016년 펀드 자유무역협정(FTA)인 아시아펀드패스포트(ARFP) 시행을 앞두고 국내 펀드시장이 잠식당할 위기에 놓여 있는 자산운용업계 역시 대책 마련에 부심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권·자산운용사들이 과거처럼 주식거래대금이 늘거나 펀드 자금이 유입되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식 경영을 하던 때는 지났다고 경고한다. 현재의 위기를 업계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골든타임으로 인식하고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력 취약한 대형사는 우물 안 개구리=자본시장이 성숙한 국가일수록 증권 산업 시장은 소수의 대형사와 다수의 전문화된 중소형사로 나뉜다. 대형사는 주로 자기자본투자(PI)나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한다. 중소형사는 국내시장 중심의 특화된 영역인 니치마켓을 공략해나간다. 대형사와 중소형 증권사가 서로 경쟁하기보다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국내 자본시장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 금융 당국이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IB 육성 기반을 만들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한 대형 증권사의 임원은 "글로벌 IB로 가려면 자본력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 다양한 상품개발능력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면서 "국내 증권업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때 이런 곳이 몇 곳이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국내 최대 증권사의 자기자본은 3조6,000억원으로 골드만삭스의 5%, 노무라증권의 12.5% 수준에 불과하다. 취약한 자본력은 인력의 생산성 측면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2012년 말 기준 국내 대형 5개 증권사의 1인당 순영업수익은 2억3,200만원으로 골드만삭스(11억8,800만원)의 20%, 노무라증권(7억4,500만원)의 30% 수준에 그친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이렇게 취약한 자본력으로는 국내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위험을 인수하는 본연의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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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쿼리그룹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라=그렇다고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시장에 계속 안주하는 것도 문제다. 대형사의 해외 진출 및 IB 영역 강화는 중소형 증권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비(非)미국계 금융회사로 10년 안팎의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IB로 도약한 호주의 맥쿼리그룹의 성공 사례를 곱씹어볼 만 하다.

맥쿼리는 1980년대 호주 금융 시장의 협소한 규모 및 경쟁 심화로 성장 한계에 직면하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실패도 겪었지만 끊임없이 해외 진출을 추진했고 2,000년 들어 결실을 봤다. 이 시기에 유럽과 북미·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공공영역이던 인프라 산업을 민영화하는 움직임을 읽고 집중 공략한 것이다. 맥쿼리의 성공은 해외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글로벌 IB를 무조건 따라 하기보다는 차별화된 사업 모델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맥쿼리그룹은 호주 안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곳에만 머무르면 시장이 포화돼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면서 "차별화된 사업 모델과 함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공격적으로 도전했던 기업문화가 결국 오늘날의 맥쿼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당장 해외로 나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해외와 국내시장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김영도 박사는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거나 반대로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합병하려 할 때 현재는 대부분 외국계 증권사들이 주관사를 맡아 일을 진행하고 국내 증권사는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부분부터 스스로 딜을 진행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 개선으로 퇴출 위기에 몰린 중소형 증권사는 사업분야를 좀 더 특화·전문화해야 한다. 중대형 증권사와 비슷한 수익구조로는 마진 악화로 경쟁 자체가 안 된다. 우선 특정 산업 및 고객 집중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특정 고객층을 공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관계형 네트워크는 중소형 증권사가 강점을 지닐 수 있는 분야다.

◇2016년 시장 개방…자산운용사 대응전략은=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 빠져 있는 운용업계는 2016년 ARFP 참여를 앞두고 있다. ARFP는 한국·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등 4개국이 참여하는 역내 펀드시장 개방 논의로 현재 국가별로 업계 의견 수렴작업을 하고 있다. 논의 진행 상황에 따라 태국·일본 등으로 참가국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한 나라에서 출시인가를 받은 펀드상품을 다른 회원국에서 간단한 등록 절차를 거쳐 쉽게 판매할 수 있는 펀드 FTA인 셈이다.

국내 운용업계는 ARFP 참여에 난색을 표한다. 호주·싱가포르에 비해 펀드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시장을 개방할 경우 국내 고객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ARFP 참여가 운용업계에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시장에서 펀드 열풍이 식으면서 지속적으로 환매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ARFP를 잘 활용하면 판매시장을 확대해 고객 수요를 다변화할 수 있고 해외투자가를 겨냥한 상품개발에 힘써 국제 경쟁력을 갖출 기회도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 운용사들이 공략할 수 있는 성장잠재력이 있는 국가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이라며 "이들이 ARFP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현지시장을 공략할 계획을 미리 짜둬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민우·한동훈 기자 ingagh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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