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명품 콘텐츠가 경쟁력이다


얼마 전 영국 공영방송 BBC는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잃어버린 악기를 되찾은 소식을 전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건이 뉴스가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그 악기가 시가 20억원이 넘는 진품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는 것, 둘째는 도둑이 단돈 17만원(100파운드)에 이 천하의 명기(名器)를 처분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300년여 간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심금을 울린 명품 악기도 가치를 모르는 이에게는 한낱 나무로 된 소리통일 뿐이었다.

새삼스레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명품의 핵심 속성과 조건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다. 명품은 본질적 기능에 충실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며 값을 묻지 않고 언제든지 사후서비스(AS)가 되는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진정 명품을 명품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평가를 통한 가치부여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제아무리 깊고 영롱한 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알아보고 활용할 줄 모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명품은 생산자의 존재론적 노력과 예술가의 혼, 그리고 소비자의 인식론적 가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올바른 소비가 양질콘텐츠 만들어


창조경제 시대에 경제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 필자는 명품 콘텐츠의 지속적인 창출이 필요함을 역설해왔다. 자율성과 창조성, 의외성의 토대 위에 열정과 신명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우리 문화콘텐츠의 저력은 이미 드라마ㆍ영화ㆍ음악ㆍ미술ㆍ공연ㆍ캐릭터 등 다양한 장르의 빛나는 별들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와 예술은 세계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명품 콘텐츠의 발현 조건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이다. 우연이 아닌 필연,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명품으로 사랑 받고 유지되는 묘안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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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형성원리를 통해 볼 때 명품 콘텐츠의 창출 조건 또한 생산과 소비의 상호작용에서 찾아야 한다. 생산이 소비를 추동하는 밀어내기(push) 방식보다는 소비가 생산을 이끄는(pull) 방식에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고 건전하게 이용하려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제작 현장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경쟁할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 없는 소비자에게 쥐어진 명품 콘텐츠는 무지한 도둑에게 놓여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같다.

안목 키우는 교육 제도화 필요

수요공급의 측면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콘텐츠 진흥정책은 소비자에 대한 교육과 체험을 통한 양질의 콘텐츠를 감별하는 능력과 거래의 투명성 제고에 보다 초점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 무릇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좋은 문화콘텐츠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가고 그 가치를 이해하게 해주는 교육(content literacy)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문화예술 분야 창작중심 교육은 올바른 콘텐츠 소비교육으로 확대돼야 한다. 콘텐츠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될 때 사람들은 어둡고 좁은 통로에서 나와 밝고 넓은 마당에서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건전한 소비로부터 시작된다.

소비가 정상화되면 거래 질서가 공정해지고 궁극적으로 제작 시스템에도 변화가 온다. 한국 영화시장의 경우 1990년대 말 티켓링크 제도가 도입되면서 박스오피스 등 입장권 거래가 획기적으로 투명해졌고 영화시장 경쟁력의 전환점을 이룬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비와 유통이 바로잡히고 시장이 바로 서면 트렌드 분석역량과 예측가능성이 높아지고 생산 현장은 자연스레 활기를 띠게 된다. 우수한 인재가 찾아들고 투자가 활발해져 양질의 일자리와 다양한 콘텐츠가 창출되는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자유 시장경제 질서에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해야 한다. 정보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오늘날 소비자는 빛의 속도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시대 명품 콘텐츠의 가치와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 메커니즘의 토대 구축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명품 콘텐츠를 생산하고 양질의 수요를 창출하며 이에 부응하는 시장원리가 작동케 하는 것이 그 첫 단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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