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이 잇달아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 소식을 알리며 기뻐하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내 해운사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형 컨테이너선의 등장으로 각 노선 화물 적재량이 늘면서 운임이 추락하고 있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국내사들은 대형선 발주 경쟁에 뛰어들지 못한 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4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최근 조선업 불황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내 조선 '빅3'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앞세워 수주 가뭄을 헤쳐가고 있다.
지난 3일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라인으로부터 1만9,630TEU(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1척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중공업은 지난 4월 홍콩 선주사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인 2만1,100TEU급 컨테이너선 6척을 수주한 것을 포함해 올 들어 2만TEU급 10척을 수주했고 한진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각각 2만TEU급 3척, 2척을 수주하는 등 국내 업체들은 세계 초대형 컨테이너선 물량을 독식하고 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기술의 관건은 일정한 규격 내에서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확보하느냐다. 무작정 배를 넓히고 늘리면 컨테이너를 더 실을 수는 있겠지만 운하를 통과하거나 항구에 들어갈 때, 컨테이너를 싣고 내릴 때 문제가 생긴다.
올들어 5월까지 세계 선박발주량이 지난해의 42%에 불과한 가운데 국내 조선사들은 초대형선이라는 단비를 만나 지난해 대비 75%를 유지하며 일본(44.8%)과 중국(19.5%)에 비해 선방하고 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덕에 조선업계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반면 국내 해운사들은 같은 이유로 한숨이 나온다.
최근 주요 노선에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등장한 뒤로 선복량(화물 적재량)이 증가해 운임이 바닥을 기는 데다 최근 선박 추가발주로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항로의 경우 올 1월 초 TEU당 운임이 1,085달러였지만 4월 600달러를 밑돌기 시작해 꾸준히 내려가며 이달 초 342달러로 올 초 대비 3분의 1토막이 났다. 이는 세계 경기 부진에 따른 물동량 감소의 영향도 있지만 지난달 현재 1만8,000TEU급 이상 선박 20척이 운항하는 등 대형 컨테이너선의 등장이 큰 원인으로 분석됐다. 전형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수요는 주는데 공급과잉은 가속화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 국내 해운사들의 경우 부채 증가와 지난해 적자 누적으로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해외 대형 해운사들이 주도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 경쟁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한 번 움직일 때 많은 양을 싣기 때문에 원가 경쟁력이 높다"며 "컨테이너선의 대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국내 해운사들이 투자 시점을 놓치면 해외사들과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