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는 지난 13일 실시한 쟁의행위 돌입 여부를 묻는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투표자 4만537명(투표율 88%) 중 3만2,591명(투표자 대비 80.4%)이 파업에 찬성했다고 14일 밝혔다.
현대차 노조는 이에 따라 오는 20일부터 파업이 가능하다. 19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최종 노동쟁의 조정이 잡혀 있지만 노사 간 입장차이가 커 극적 타결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노조는 순이익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과 조합활동에 민형사상 책임 면제, 퇴직금 누진제 보장, 완전 고용보장 합의서, 정년 만 61세 연장, 대학 미진학 자녀 취업지원 기술취득 지원금 1,000만원 등 회사가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가결시키자 현대차 1ㆍ2ㆍ3차 협력업체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현대차가 노조 파업으로 조업단축ㆍ조업중단ㆍ휴업 등을 실시하면서 고사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수차례나 해왔기 때문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울산ㆍ경주 등 전국에 위치한 1ㆍ2ㆍ3차 협력업체 수는 5,000여곳에 달한다. 이들 협력업체는 지난해 7~9월 열두 차례 진행된 노조의 파업으로 1조3,262억원에 이르는 매출차질을 빚은 바 있다
협력업체들은 또 지난 3월9일부터 13주째 계속된 노조의 주말특근 거부로 유동성이 악화돼 경영난을 겪은 바 있다. 현대차는 당시 전체 협력업체의 매출차질이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다.
경주에 위치한 협력업체의 A대표는 "지난해 노조의 파업과 최근의 13주 연속 주말특근 거부로 이미 심신이 지쳤다"면서 "또다시 들려온 파업 소식에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은행과 보증기금 등 금융권의 문을 두드리느라 정신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는 "이제 노조의 파업은 천재지변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협력업체 직원 하모(42)씨도 "노조의 파업은 영세한 2ㆍ3차 협력업체를 사지로 몰아넣는다"며 "(노조는) 협력업체 임직원들의 생존권을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지역사회도 노조의 파업 가결에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 인근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이모(51)씨는 "파업을 하면 주변 상가 매출이 3분의1 떨어진다"며 "지역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울산상공회의소는 "대내외적으로 경제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자동차 업종의 노사분규는 지역 전반의 생산활동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현대차 노사가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도록 대화를 이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울산상의는 현대차 노조의 파업일정이 구체화되면 노사분규 자제와 대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의견을 노사에 전달할 방침이다.
기아차 노조도 같은 날 70%가 넘는 찬성률로 쟁의행위를 가결하면서 생산공장이 자리한 광주 지역 경제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기아차 역시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중노위 조정기간을 거쳐 20일부터 파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경우 광주공장은 하루 2,000여대의 생산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광주공장은 지난해도 노조의 열두 차례 부분파업으로 2만2,400대의 생산차질을 빚으며 3,380억원의 생산손실을 봤다.
특히 올해도 파업이 현실화되면 광주공장은 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한 62만대 증산 프로젝트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62만대 프로젝트는 현재 50만대인 연간 생산량을 62만대로 늘리는 것으로 광주공장 노사는 협의 시작 19개월 만인 6월에야 가까스로 합의했었다.
기아차 협력업체를 비롯한 지역경제계는 모처럼 찾아온 도약의 기회가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주상의의 한 관계자는 "힘겹게 증산협의를 매듭지은 상황에서 기아차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것은 안타깝다"며 "지역경제를 먼저 생각하는 큰 그림을 노사가 그렸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