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프린터는 거의 모두가 컬러 프린터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특이한 문화 때문이다. 바로 연하장 문화다.연하장이라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주고받지만, 일본 같이 국민과 국가가 하나가 되어 연하장을 보내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연하장을 보내는 기간이 약 1개월 정도로 정해져 있다. 이 기간에 연하장을 보내면 우체국은 1월 1일 새벽 전국 각지로 동시에 배달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1월 1일 아침에 연하장을 받아볼 수 있다. 99년 1월 1일 일본 국민이 받은 연하장 수는 1인당 평균 30통.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몇 백통씩 받는다.
일본의 연하장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카드가 아니다. 연하장용으로 나온 관제 엽서에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로 새해 인사를 적거나, 사진 등을 붙이거나 하여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보낸다. 요즘에는 그림 엽서를 사거나 미리 사진을 인쇄소에 맡겨 엽서에 사진을 인쇄하는 등 제작 시간을 절약하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싸면서도 고품질의 컬러 프린터가 등장해 사람들의 연하장 제작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컴퓨터를 이용하므로 주소 관리, 인쇄가 간단해졌다. 상대방에 따라 간단히 디자인을 바꿀 수도 있고, 전문 인쇄 업체에 부탁하지 않고도 원하는 사진을 쉽게 연하장에 넣을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동시에 절약되기 때문이다.
결국 프린터 회사들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맞추어 신제품의 발매 시기를 10월로 정해 놓고 있다. 연하장을 위한 컬러 프린터 시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회사들은 엡손과 캐논을 선두로 알프스 전기, NEC, 일본 휴렛팩커드 등이다.
엡손은 PM700, PM770 등 전작의 명성을 잇는 최소 입자 잉크량을 4PL로 하는 PM800을 발표했다. 지난해 발표한 모델에 비해 1.5배 인쇄 속도가 빨라져 연하장 제작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지난해 라이벌 엡손에 완패했던 캐논도 올해 인간의 가시 한계를 뛰어 넘는 1800DPI 상당의(실제는 1200DPI) BJ F850을 내놓았다. 그 밖의 회사들도 성능 면에서는 다소 이 두 회사에 뒤지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가격, 기능 등으로 승부를 하고 있다.
이 프린터들은 모두 연하장 제작 소프트웨어가 부가된다. 어떤 프린터를 골라야 할지 망설이는 소비자들을 위해 컴퓨터 잡지들은 모두 최신 컬러 프린터의 성능비교를 특집 기사로 실어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고 있다.
/이주호(하이텔통신원·동경대 연구원) LEEJOOHO@VSS.ISS.U-TOKYO.AC.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