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온라인 주식강국] (하) 인프라는 최고, 제도는 취약

얼굴 도장 찍어야 계좌개설 가능… "이젠 개선책 찾아야"<br>실명제법 따라 '대면확인' 필수<br>증권사 年 수백억 수수료 지불<br>공인인증서·OTP등 이용하면 금융거래 편의성 훨씬 높아져

지난 1990년대 말 국내에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한 후 은행ㆍ증권 등 온라인 금융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망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처럼 온라인 금융에 필요한 정보기술(IT) 인프라는 세계적인 벤치마킹 대상이지만 제도는 아직도 이런 인프라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ㆍ일본 등과 달리 계좌를 개설하려면 직접 지점을 방문해 ‘얼굴도장’을 찍어야 하는 ‘대면 계좌개설’ 제도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뒤늦게나마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으나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겉으로는 온라인 금융 강국의 면모를 갖췄지만 소프트웨어(제도)는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회사로 직접 가야만 계좌개설 가능=‘5,218만명, 1경1,665조원, 400만명’. 이는 개인 인터넷뱅킹 가입자 수, 지난해 은행권의 전자금융 거래 규모, 온라인 주식계좌 수를 가리킨다. 은행 지점이나 증권사 객장에 나가지 않아도 인터넷만 연결됐다면 어디서든 다양한 금융거래와 상품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전자금융 이용자와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온라인으로 주식 또는 예금계좌를 개설할 수는 없다. 금융실명제법상 반드시 지점 등을 찾아가 ‘대면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증권사들은 은행이나 농협ㆍ새마을금고 등과 계약을 맺고 실명확인을 대행하게 한 후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은 영업직원들이 직장이나 가정 등 고객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계좌를 개설해주기도 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키움증권을 비롯해 한국투자증권ㆍ이트레이드증권ㆍ미래에셋증권ㆍ대우증권ㆍKB투자증권 등이 은행권에 실명확인 대행 수수료로 지불하는 금액은 연간 최대 500억원에 달한다. 특히 키움증권이나 이트레이드증권 등 오프라인 지점이 거의 없는 증권사들은 매년 많은 금액을 계좌개설 비용으로 지급하고 있다. 온라인 주식거래가 활성화돼 있다고는 하지만 제도는 아직도 미흡한 수준이다. 증권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주식계좌 개설이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한 상황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증권 인프라의 시너지를 반감시키는 일”이라며 “이미 온라인뱅킹과 주식거래가 보편화된 마당에 제도가 인프라를 뒤쫓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온라인 규제 개혁은 ‘차일피일’=현재 주식계좌뿐 아니라 은행계좌도 온라인으로는 개설할 수 없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은 대면거래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면거래 관련 규정을 고치려면 금융실명제법을 개정하거나 예외규정을 둬야 한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규제 완화 차원에서 ‘인터넷은행’과 금융실명제 개선 관련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존 은행권과의 마찰과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규제 부활’ 움직임에 막혀 금융실명제 개선 논의는 1년 가까이 진척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비(非)대면 계좌개설은 기본적으로 금융실명제법을 고쳐야 하는데 아직 개정과 관련한 움직임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임호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온라인 금융거래와 관련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구비돼 있는 마당에 계좌를 개설할 때 단순히 대면방식이 비대면보다 덜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이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규제완화 여부와 관련된 정책상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대안 모색해야=현재 증권업계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비대면 계좌개설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공인인증서나 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OTP) 등이 보편화되면서 본인확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온라인 금융문화가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금융거래의 편의를 높일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은 충분한 셈이다. 현재 선진국의 경우도 온라인 방식과 우편으로 본인확인 서류를 청구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례로 공인인증서나 인터넷 동영상을 통한 대면확인 등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세무나 법원ㆍ보험ㆍ카드ㆍ전자상거래 등 대부분의 금융거래가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비대면 본인확인 방법 절차를 보면 우선 기존의 공인인증서 또는 OTP, 본인명의 휴대폰을 통해 이중확인 절차를 거쳐 홈페이지 계좌개설을 신청하게 된다. 그후 고객이 관련 서류를 은행 등에 제출하면 통화 등을 통해 본인확인 질의과정을 거친 후 계좌개설과 카드발급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됐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 16년 동안 IT 인프라와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금융거래의 모습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며 “금융실명제 내의 ‘대면을 통한 본인확인 원칙’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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