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자본시장법 시행 3년, 갈길 먼 한국IB] <상> 거꾸로 가는 경쟁력

국내 대형 M&A 딜 마저 외국계 천하… 토종證은 구경꾼 신세<br>해외공략 中·동남아 국한… 업무도 단순 중개 그쳐<br>야 '법 개정안'에 반발… 논의도 못한채 폐기 위기




지난해 12월 하이마트가 최대주주와 선종구 회장의 지분 매각을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대우증권이 매각 주관사로 꼽힐 수 있다는 추측이 나돌기 시작했다. 대우증권이 지난해 5월 하이마트의 기업공개(IPO) 주관사를 맡으면서 성공적으로 증시 데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매각 주관사 자리는 외국계 투자은행(IB)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에 돌아갔다.

최근 이뤄진 웅진코웨이 매각 주관사 선정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지분매각 주체인 웅진홀딩스는 지난해 이후 있었던 세 차례의 회사채 발행을 우리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맡겼다. 그러나 정작 웅진코웨이의 매각 주관사로는 국내 IB는 배제한 채 골드만삭스를 선정했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은 웅진으로부터 입찰제안요청서(RFP)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본시장의 혁신과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원대한 포부하에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그동안 국내 자본시장은 업권별 장벽이 무너지고 신상품이 쏟아지면서 외형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경쟁력을 들여다보면 이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안방조차 외국 IB에 내주고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인수합병(M&A) 시장 상황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지난해 이뤄졌던 굵직굵직한 M&A 딜은 거의 외국계 IB의 몫이었다. 하이마트와 옹진코웨이 외에도 아이마켓코리아는 골드만삭스가,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보유지분 매각도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이 차지했다. 국내 증권사는 외국계 IB와 공동으로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등에 매각 주관사로 참여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매각 주체가 국내 은행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IPO 시장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올 IPO 최대어로 꼽히는 산은금융지주는 최근 IPO 주관사를 선정하면서 국내는 삼성증권, 해외는 골드만삭스를 대표주관사로 선정하는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 규모였던 삼성생명의 IPO 때 역시 해외투자가들을 담당한 것은 골드만삭스였다. 대형 딜에서 국내 대형 증권사의 단독 주관사 선정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 정도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만약 IPO가 기관투자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이것도 외국계가 휩쓸었을 것"이라며 "안방에서조차 구경꾼으로 전락한 처지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관련기사



해외에서의 성적 역시 초라하기만 하다. 국내 증권사의 해외 진출 지역 대부분이 선진 글로벌 시장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국한돼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말 현재 국내 증권사의 해외 점포 93곳 중 77%가 넘는 72곳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그나마 미국(11곳)과 영국에 있는 해외 현지 법인 또는 사무소들은 M&A나 IPO 등 IB 업무보다 대부분 한국 주식 또는 채권 판매 등과 같은 브로커리지 업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IB라기보다는 단순 중개업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최근 3년간 국내 IB들이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는 것은 자본시장법이 반쪽짜리로 전락하면서 증권사 대형화와 신사업 영역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IB 업무의 핵심인 M&A와 인수를 위해서는 자기자본투자(PI)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현재의 자본시장법에서는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IB와 리서치ㆍ자산관리 등 영역 간 정보ㆍ투자 교환도 차단(차이니스월)돼 있어 제대로 된 IB활동도 할 수 없다. 게다가 기업에 대한 여신 업무도 불가능해 헤지펀드 육성을 위한 프라임브로커 업무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국내 IB는 좁은 울타리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고 국내외에서 시장을 빼앗기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이마저 야당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면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대형 IB 육성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경우 한국 IB는 글로벌 시장에서 또다시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IB 업계 한 임원은 "국내와 외국계 IB 간 실력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별 인력의 능력면에서는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며 "이번 기회에 한국 IB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국내 자본시장은 여전히 글로벌 IB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돼 금융투자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홍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