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낭패, 그리고 밀운불우

낭패는 이리의 형상을 한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반면 패(狽)는 앞다리 두개가 없거나 짧다. 이 때문에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며, 고집을 부리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잘 풀리지 않아 처지가 고약하게 꼬이는 경우 사용하는 이 말이 요즘처럼 마음에 와닿는 경우도 드물다. ‘지금 집 샀다가는 낭패’라는 청와대의 한 관계자의 언급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이 말은 바로 우리 경제에 적용될 수 있는 ‘키 워드’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를 거품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지금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에 거품이 잔뜩 끼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거품이 빠지는 과정인 디버블링(debubbling) 프로세스가 과거 경험해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연착륙이 바람직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장기간의 저금리 기조로 부동자금은 풍선처럼 부풀었지만 금리인상 카드를 쓰기는 어렵다. 한계기업과 빚이 많은 가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금리 유지가 기업 투자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나 세금 감면 등을 통한 투자 환경 개선이 경제의 자생력 회복을 위한 대안 중 하나지만 참여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이나 분배의 논리에 함몰돼 있어 ‘소 귀에 경 읽기’다. 환율, 유가, 북한 핵 등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외생 변수다. 외생 변수는 우리의 대응 능력 밖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곤혹스러운 존재다. 약간의 우연들이 합쳐져 예기치 않은 필연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제 위기가 대개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뻔히 예상되는 리스크에도 속수무책이다. 더욱이 표를 겨냥해 쏟아내는 대선주자들의 포퓰리즘성 공약은 경제를 온통 지뢰밭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 ‘밀운불우(密雲不雨)’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의 먹구름과 같은 답답함과 폭발 직전의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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