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다른 혹성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많은 사람을 화성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오래전 개봉한 SF영화의 대사쯤으로도 들린다. 하지만 영화 얘기가 아니다. 미국 항공우주회사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천재 경영자 머스크. 그의 영화 같은 성과와 계획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머스크가 지난 2012년 발표한 이른바 '멀티플래닛(Multi-Planet)' 계획은 사람들을 지구 밖 다른 행성인 화성에서 살게 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10여년 안에 화성에 8만명이 살 수 있는 식민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사람들을 실어나를 우주선 '팰컨헤비'는 이미 건조 중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를 꿈꿨다고 한다. 청정한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병들어가는 지구에서 모든 인류가 영원히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확신이다.
이런 이유로 머스크는 우주 사업과 동시에 전기자동차 제작에 착수했다. 고성능 전기차 '로드스터'와 양산형인 '모델 S'를 만들어낸 테슬라가 그의 회사다. 배기가스가 전혀 없는 전기차를 보급해 지구의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핀테크 개발 이면엔 낡은 규제 여전
전기차의 연료인 전기도 그가 회장으로 있는 태양광 업체 '솔라시티'에서 생산한다. 그는 미국 전역에 슈퍼차저 스테이션을 구축해 테슬라의 전기차 고객에게 평생 무료로 전기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우주개척과 태양광, 그리고 전기차. 머스크가 10여년 만에 본궤도에 올려놓은 사업은 모두 중후장대한 것들이지만 그의 출발은 조그만 인터넷 사업이었다.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을 이틀 만에 때려치우고 창업한 인터넷 지도 회사 '집(Zip)2'를 3년 후 3억7,000만달러를 받고 컴팩에 매각한 것이 그의 첫 대박이었다.
상상 속의 무엇인가를 놀라운 속도로 실현해나가는 45세 CEO의 삶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금융권에 출현한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어디선가 보지도, 듣지도, 상상조차 못했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열광하게 한다면 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최근 금융권의 핫이슈가 '핀테크'이기 때문이다. 첨단 정보기술(IT)과 결합한 금융이 어떤 형태로 재탄생할지 흥미진진하다. 국내 금융사들은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은행은 홍채인식을 통한 비대면 인증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우리은행은 집단지성을 이용한 사기방지 솔루션 개발에 착수했다. BC카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비자의 구매의사를 예측, 마케팅에 활용하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이렇게 새로운 금융을 찾는 데 한창인 금융권의 이면에 안일한 모습도 엿보인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는 지난달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쓴소리를 했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소액송금 서비스 '뱅크월렛카카오'를 사업승인 요청 이후 2년 반 만에 시작할 수 있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창구를 방문하지 않고도 비대면인증으로 모든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문을 연다고 하지만 규제에 묶인 우리나라 인터넷뱅킹은 비밀번호 다섯 번만 틀려도 창구에 달려가야 하는 형편이다.
핀테크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일부 금융권 종사자들의 태연하기 그지없는 자세도 우려스럽다.
상상 뛰어넘는 금융서비스 필요
화성을 향해 날아가던 아이언맨, 머스크가 느닷없이 금융시장에 뛰어들어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공개하며 한판 붙어보자고 하면 어쩔 것인가. 그럴 일이 있겠느냐고?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머스크가 우주로 눈을 돌리기 전에 터뜨린 두 번째 대박이 바로 인터넷 결제 서비스 '페이팔'이다. 설립 3년 만인 2002년 e베이가 사들인 페이팔의 인수가격은 무려 15억달러였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 때 얘기다.
아이디어와 기술·추진력으로 무장한 패기 넘치는 제2, 제3의 아이언맨들이 금융산업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박태준 금융부장 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