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사외이사 주축 선출 방식… 후계자 양성·승계 체계도 없어
외압에 시달리는 구조적 한계
신한·하나, 내부출신 등용 안착… 現 회장 회추위 참여 외풍 차단
"결국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것입니다. 인사는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수백조원 자산의 금융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인데도 대증적 접근으로 일관했어요.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도 없고 경영승계계획도 없습니다. 낙하산이 내려올 최적의 환경인 셈입니다."(대형 금융지주 고위관계자)
KB금융 사태를 계기로 국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취약점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가운데 유독 KB가 오랜 기간 질곡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근본 원인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회장선출 프로그램에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낙하산이 활개칠 수 있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KB금융그룹은 물론 국내 금융사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환골탈태하고 선진형 지배구조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안목에 기반한 체계적 회장선출 과정부터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5일 금융계에 따르면 신한·하나·KB·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의 회장선출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신한·하나금융지주는 지주 중심의 체계적인 회장선출 방식을 정착시킨 반면 KB금융지주는 사외이사가 주축이 돼 상대적으로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지분구조 특성상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나머지 지주사와 수평 비교하기는 어렵다.
우선 신한·하나금융지주는 각각 지배구조 및 운영위원회·경영발전보상위원회 등과 같은 후계자 프로그램을 상시 가동하고 있다. 신한금융의 경우 은행·카드·증권·생명·자산운용 등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회장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내부출신 인재를 우선 등용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하나금융 역시 매년 회장이 제안한 예비 CEO 후보군에 대한 평가 및 승계계획을 경발위가 검토하고 승인하는 절차를 마련해놓고 있다.
반면 KB금융은 9인의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회추위가 비상설로 활동한다. 당연히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은 없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운영위원회를 상시 가동하면서 후계자를 육성하고 회장 임기가 다가오면 회장후보추천위원회로 전환해 승계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현직 회장의 회추위 참여 여부도 차이가 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현 회장이 회추위에 참여한다. 회장이 차기 회장 선출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연임의 사전작업이라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투표권 및 3연임 제한 등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뒀다.
대신 회장이 회추위에 참여하게 되면 외풍차단이라는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조직장악력이 강한 행원 출신 회장이 회추위에 참여하다 보니 내부출신의 대물림이 용이하다는 뜻이다. KB금융 사태가 기형적 낙하산 인사관행이 초래한 최악의 결말이라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회장 후보 선정방식도 다르다. 공모제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금융을 제외할 때 나머지 3개 지주사 모두 추천제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다만 신한과 하나금융이 회추위에서 회장 후보를 추천하는 것과 달리 KB금융은 복수의 외부 컨설팅사를 통해 후보 리스트를 작성한다.
형태만 놓고 보면 KB금융 방식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셈이다. 이 말은 역으로 외부변수에 휘둘릴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으로도 읽혀진다. 후보추천 과정에 여백이 많다 보니 친정부 인사나 고위관료 출신들이 후보로 난립하게 된다. 낙하산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낙하산 논란을 방지하고 내부직원의 승진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회장 승계와 회장 후보 육성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KB금융 사태가 잘못된 낙하산 관행이 낳은 기형아라는 점에서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금융계 인사들은 말한다.
한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임종룡 NH금융지주 회장의 사례에서 보듯 외부인사 혹은 낙하산이라고 해서 모조리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정통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체계화된 회장선출 프로그램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