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하(下) 공공미술 선진국으로부터 배워라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단한다<br>英 버려진 화력발전소 '문화 발전소'로 변신<br>주민정서 외면한 '뉴욕공원 조각품'은 철거돼<br>국내서도 거리조성 등 장소·역사 고려해야

서울 청계천에 설치된 조형물 ‘스프링’ (위)과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시민들의 얼굴을 담아 조성된 ‘탑모양 분수’


대개 공공미술이라고 하면 거대한 조형물 혹은 건물 외벽을 장식한 벽화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공공미술은 이 뿐만이 아니며 점차 진화하고 있다. 공공미술전문가인 박삼철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단장에 따르면 장소를 의미있는 곳으로 만드는 ‘장소만들기(Making Place)’와 공동체 활성화를 이끌어 내는 ‘공동체 구축(Community Building)’으로 이뤄진다. 이번 정부 정책도 경로당과 마을회관 꾸미기의 경우 ‘공동체구축’, 걷고 싶은 거리 조성이 ‘장소만들기’에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정책이 성공하려면 주민 소통과 공유의 과정을 통해 예술과 일상이 조화롭게 엮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 사례를 보자. 일본 도쿄 롯본기힐스의 지역 조성에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모양 조형물 ‘마망(Maman)’이 들어섰다. 세계적인 작품일지라도 설치 후 1년간은 ‘임시’였다. 그동안 지역 주민들 설득 뒤 의미가 “좋다”고 받아들여진 뒤에야 설치 보전으로 확정됐다. 반면 뉴욕의 공원에 설치됐던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조각 ‘기울어진 호’는 “넘어질 듯한 철제 구조물이 흉측하다”는 주민들의 반발로 철거됐다. 주변 정서와 맞지 않으면 거장 작품이라도 거둬들인 사례다. 우리의 경우 서울 청계천에 설치된 클라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은 훌륭한 작품이지만 생태하천을 표방한 서울의 도심 속 공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는 “공공미술은 장소특정성의 의미를 살려야 하며 해외 유명작가의 명품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혹은 작가와 주민을 외면한 관 주도식도 경계해야 한다. 경로당과 마을꾸미기의 경우, 허름한 기존의 공간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도시 정체성을 그곳의 역사로 인정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스위스 취리히 서부 공장지대는 재개발과정에서 건물 외관은 낡은 공장이지만 내부는 세련된 레스토랑으로 재탄생했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갤러리는 버려졌던 화력발전소의 골격을 유지한 채 미술관으로 바뀌었고 연간 400만명이 방문하는 ‘문화발전소’로 새단장했다. 뉴욕의 명소가 된 미트패킹스트리트는 육류포장공장이 이곳의 고유한 특색이란 점을 인정해 이 지역 예술가들이 ‘육류업자 보호’를 주장하면서 도시 조경을 진행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주민자치센터를 운영하면서 지역발전과정을 철저히 검토하며 서두르지 않고 수년 이상 사업을 진행했다. 걷고 싶은 거리 조성 등에는 참신한 신기술의 접목을 기대할 수 있다. 가나아트센터 공공미술전문가 배원욱씨는 “LED(발광다이오드)를 활용한 다변화된 뉴미디어 아트 같은 기술의 발달을 반영한 미술을 기대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예로든 브뤼셀 덱시아(Dexia) 타워는 38층 건물 4,200개 창문에 15만개 LED 전구를 부착해 날씨에 따라 형상과 색이 바뀐다. 행인이 조작할 수 있는 컨트롤박스를 통해 손끝 하나로 건물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탑 모양 분수’는 13분에 한번씩 스크린 속 화면이 바뀌고 그 속에는 시민들의 얼굴이 비치도록 설계됐다. 이곳에 설치된 아니쉬 카푸어의 조형물인 ‘클라우드 게이트’는 거대한 스테인레스스틸 외벽이 거울처럼 주변환경과 사람들을 비춰낸다. 관광명소가 된 밀레니엄파크는 향후 10년간 수조원의 경제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됐다. 공공미술을 전공한 작가 안종연씨는 “건물 뿐 아니라 지역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 컨셉팅이 우선”이라며 “나아가 지역 브랜드화를 추구한다면 각 문화분야를 분리하는 편의주의가 아니라 아니라 건축, 문학, 미술이 통합돼 문화를 이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존 관주도 사례인 통영 동피랑 마을 벽화나 타일장식의 옥수역 프로젝트, 동대문 동화시장 바닥그림 등은 한때 화제는 됐으나 작품 수준이 낮고 주민들의 동의를 도외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정부의 ‘예술 뉴딜’ 정책이 지역예술인과 주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실현에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 서울 낙산 프로젝트, 정동길 화분작업, 이화여고 담장벽화 등은 사후관리 부족으로 ‘일회성 환경미화’로 비판받는 실패한 사례들이다. 정부는 이에 대비해 지원금을 사전과 평가 후로 분할 지급하는 방식도 검토중이지만 영구보존될 공공미술의 장기적 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