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채권단 협의로 채무 재조정… 3개월 이상 연체자에 적용

■ 어떻게 작동되나<br>1~3순위 복잡한 권리관계 대출기관 1곳으로 묶는 효과<br>도입 강제할 정책수단 없어 금융권 높은 참여율이 관건<br>무리하게 주택 산 채무자 도덕적해이·형평성 문제도


우리은행은 심화되는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을 위해 '트러스트앤리스백(신탁 후 임대)'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주택담보대출자의 복잡한 채권관계 탓이다. 대출자는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2금융을 통해서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는데 트러스트앤리스백 제도를 시행하면서 우리은행이 2금융 채권까지 해소할 방식이 마땅찮았다. 급기야 우리은행은 다른 금융기관에서 받은 소액대출을 대환대출해주고 '트러스트앤리스백'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는 방안까지 추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배임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를 포기했다. 하우스푸어를 구제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 구조조정에서 사용했던 워크아웃 방식을 도입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채권금융기관끼리 협의체를 구성해 복잡한 채권관계를 해소한 뒤 '트러스트앤리스백'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감독 당국은 더욱이 재정 투입 없이 채권금융기관 간 협의로 하우스푸어 해법을 모색하고 돈을 빌린 사람만 책임을 지고 빌려준 금융권은 책임이 없는 공급자 위주의 주택담보대출 관행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취지다.


◇하우스푸어 워크아웃 방식 도입 어떻게=하우스푸어 워크아웃은 기존 기업워크아웃과 형태가 동일하다. 기업 워크아웃은 회생 가능한 부실기업의 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모여서 채권단을 구성하고 협약에 의해 ▦기존 채무조정 ▦대출이자 감면 ▦상환기간 연장 등을 해주는 기업 구조조정이다. 필요하면 영업활동에 필요한 신규 자금도 지원한다. 대신 해당 기업은 금융기관의 빚을 갚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우스푸어 워크아웃도 적용 대상이 불특정다수의 하우스푸어라는 점만 빼면 기업 워크아웃과 운영 방식이 똑같다. 장기연체 중인 하우스푸어의 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통된 협약에 따라 채무조정분담에 나서게 된다. 우선 주택을 담보로 여러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았다가 3개월 이상 연체 중인 다중채무자들부터 적용한다.

하우스푸어 워크아웃은 재정 투입 없이 채권금융기관 간 협의만으로 진행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대규모 기금을 마련해 과다채무를 탕감해주거나 주택 지분을 당국이 사들이는 방안 등을 제시한 것과 대비된다. 금융감독 당국은 대출계약은 사적인 계약인 만큼 채무자와 협의해 상환 방식을 재조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업 워크아웃과 마찬가지로 때에 따라서는 금융기관들이 손실을 부담할 수도 있다.


◇모럴해저드 해결 과제로=하우스푸어 워크아웃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금융권의 높은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은 제도 정착을 위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줄 뿐이지 참여를 강요할 정책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초 감독 당국과 은행권이 공동으로 야심 차게 추진했던 주택담보대출 프리워크아웃 제도가 아직까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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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금융권에 비해 후순위채권이 많아 상대적으로 불리한 제2금융권을 어떻게 협의체로 끌어들이느냐는 점도 중요 변수다. 금감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상호금융ㆍ저축은행ㆍ여신전문금융회사 등 비은행계열의 후순위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5조7,000억원, 차주 수는 15만여명에 이른다.

금감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채권금융기관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하다 보면 2ㆍ3순위 채권을 많이 갖고 있는 2금융권 기관들이 피해의식을 느낄 수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게임의 룰을 잘 만들어 이들을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도덕적해이와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숙제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리하게 주택을 산 채무자나 주택을 담보로 유흥ㆍ사행성 소비를 누린 채무자까지 지원하면 집도 없는 채무자와의 형평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계약은 사적인 계약인 만큼 금융회사가 채무자와 협의해 상환 방식을 재조정하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서 연구위원은 "하우스푸어 지원 대상 역시 소득 하위 0~40% 등 취약ㆍ중간소득계층 이하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다주택 소유 가구, 대형주택 보유 가구도 지원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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