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라져가는 옛 모습이 있는가 하면 갈수록 묵은 된장처럼 깊은 맛을 더해가는 전통과 문화도 많다. 그중 하나가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국의 풍부하고 다양한 도자기 유산이다.
나는 한국의 옛 도공들이 어수선한 나라 안팎의 정세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수백년 동안 그토록 아름답고 정교한 미적감각을 지켜왔다는 사실에 경탄하고는 한다. 신라시대의 토기에서부터 고려시대의 전통적 청자, 그리고 분청사기를 거쳐 조선시대의 백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자기들이 저마다 당시 한국의 문화적 특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영구한 교과서들이 아닌가.
그토록 아름다운 도자기가 오늘날 과학적 진보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도 흙을 빚어 모양을 내고 유약을 바른 후 구워내는 모든 과정에서 지극히 원초적인 방법만을 이용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옛 도자기에는 단순성, 아름다움, 그리고 영속성의 멋이 있다.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세상에서 맛보는 단순성, 성가신 사건이 연속되는 거친 현실을 벗어나 잠시라도 맛볼 수 있는 아름다움, 그리고 도처에서 날마다 겪는 변화의 현기증 나는 속도 가운데 재확인하게 되는 불변의 영속성을 느끼게 해준다.
조선시대 백자를 열심히 바라볼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차분해짐에 비할 것이 있을까. 고려시대 청자에 아로새겨진, 또는 분청사기 술잔의 흙에서 풍기는 단순함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다양한 모양과 형상, 그리고 무수히 많은 상감무늬 디자인도 놀랍고 창조적인 예술적 감각의 깊은 멋도 감동적이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의 도자기도 봐왔지만 한국 도자기만큼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조선시대 청자와 백자는 오늘날 내가 가장 즐기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색깔이다. 그 독특한 크림색의 백색 광택은 오늘날까지도 재현되지 못하는 흰색이다. 유약을 바르기 전에 푸른색 밑그림 역시 그것이 꽃이든, 용이든, 또는 한자나 날개 모양이든 상관없이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고 그 도자기의 자연적인 단순미를 더해준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 훌륭한 도자기 유산의 진가를 알기 위해 애써 시간을 내서라도 좋은 도자기를 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박물관ㆍ갤러리ㆍ전시회 등 여러 곳에서 훌륭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는 한국의 도자기는 한국인이 정말 긍지를 가져야 할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