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관치물가 자초하는 기업


'설 연휴가 끝났다.' 이 말은 식품 기업들에는 다시 제품 가격 인상을 저울질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뜻이다.

가격 인상이 절실함에도 연중 최대 대목을 그냥 지나친 기업 입장에서는 이제 또 물가 당국과 지루한 줄다리기와 눈치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많은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려다 이를 유보했고 밀가루 업체 등은 경영난을 이유로 가격 인상 의지가 확고해 품목별로 가격 인상 시도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은 정부가 물가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금리ㆍ환율 등 정당한 정책적 수단은 방치하면서 내수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식으로 경영 간섭을 일삼는다고 토로한다.


예컨대 개별 식품 값이 결정되는 원리와 물가가 결정되는 원리는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하는데도 정부가 식품 기업의 장부를 뒤지는 식으로 물가를 잡고 있다는 볼멘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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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가격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경제 전체를 놓고 보면 물가 잡으려다 시장만 잡아 결국 기업들만 억울하게 당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간 물가를 잡고 싶으면서도 경제 성장에 집착해온 정부가 금리 인상 등에 미온적이었음을 염두에 두면 타당성 있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무리수를 꼬집는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더 이상의 원가 압박을 방치하기 어려워 고뇌 끝에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는 기업들이 정부가 눈을 치켜뜨기라도 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며 두 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정부의 등쌀에 휘둘리는 기업들이 딱하다기보다는 기업들의 앓는 소리에 진정성이 있는 건지 헷갈린다. 세무 조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이 무서워 그렇다지만 정부의 말 한마디에 가격 인상 계획을 금세 백지화하고 서민경제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기업들의 공치사는 듣기 민망하다. 경영난에 따른 절실한 가격 인상이라면 소비자들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물가 당국을 향한 기업들의 기회주의적인 처신이 관치물가를 더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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