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20주년 맞이한 뮤지컬 '명성황후' 연출 윤호진

"이제 작은 점 하나 찍었을뿐… '새 20년' 준비해야죠"

'장수 작품' 자축 공연 아닌

로맨스 강화·전체 음악 편곡 등 완전 업데이트 버전 보여줄 것

위안부 할머니 다룬 작품 구상… 중국 시장용 뮤지컬까지 계획


"초연 때만 해도 내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었지." 백발의 노신사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한참 무대 주변을 돌며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던 그는 커다란 현수막 앞에서 멈춰 섰다. '명성황후 20주년 기념공연-우리는 대한민국 뮤지컬의 새 역사를 쓰는 주인공들이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영국까지 진출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자존심, 뮤지컬 '명성황후'가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다. 잘 나가던 연극 연출가 타이틀을 버리고 미친놈 소리 들어가며 명성황후를 만든 주인공, 한국 뮤지컬의 대부 윤호진(사진·에이콤 인터내셔널 대표) 연출을 명성황후 20주년 기념공연 연습이 한창인 서울 남산창작센터에서 만났다.

20주년 소감을 묻자 거두절미하고 "그런 건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윤 연출은 "명성황후는 내가 죽은 뒤에도 20~30년 넘게 계속했으면 좋겠다"며 "20주년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점에 불과할 뿐, 거창한 소감을 말할 '마침표'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윤 연출의 말처럼 이번 공연은 그저 장수(長壽)를 자축하는 재연이 아닌, 작품 전체를 수정한 업데이트 버전이다. 명성황후와 호위무사 홍계훈의 로맨스가 강화되고, 일부 장면과 넘버도 새롭게 추가된다. "초연 이후 꾸준히 작품을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여왔어요. 이번 공연에선 그동안 쉽게 손대지 못한 음악까지 현대 감각에 맞게 전곡 편곡했어요. 새로운 모습으로 또 한 번 새 역사를 써야지."


명성황후는 윤 연출의 신념과 열정의 결정체다. 극단 실험극장의 잘 나가는 연극 연출가였던 그는 1982년 영국 연수 중 '캣츠'를 본 뒤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미국 뉴욕대 공연예술대학원에서 4년간 뮤지컬을 공부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출발선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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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이듬해인 1988년 예술의전당 개관 기념작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렸지만, 지방공연을 딱 한번 하고는 세트를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다들 '윤호진이 미쳤다'고 했죠. 그런데 창작뮤지컬을 하기로 마음먹고 명성황후 밑그림을 그린 이상 돈 아쉬울 때 꺼내 들 카드를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명성황후에만 매달렸다.

1년 넘게 소설가 이문열을 설득해 대본을 부탁했다. 가곡 '향수'를 작곡한 김희갑과 그의 부인인 작사가 양인자도 윤 연출의 끈질긴 구애 끝에 한 팀으로 합류했다. 그렇게 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지 100년 되던 해인 1995년, 조선의 국모는 무대에서 부활했다. 전회 매진에 연장 공연까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87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땅을 다시 밟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10년 만인 1997년 뉴욕 링컨 센터에서 명성황후를 공연했죠. 돈 때문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강한 믿음이 늘 길을 열어주더군요." 생각한 건 뭐든 행동으로 밀어붙이는 윤 연출이다. 1982년 런던에서 캣츠를 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던 그는 20년 만인 2002년 명성황후를 가지고 그곳을 다시 찾았다.

"철없고 무모한 나 때문에 고생들 많았지." 윤 연출은 20년간 명성황후를 위해 애쓴 운영위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모두 대학 시절 윤 연출과 함께 연극반에 몸담았던 친구들이다. "몇 명은 자기 집 담보 잡아 우리 공연을 뉴욕으로 보내줬어요. 30주년엔 휠체어를 타든 지팡이를 짚든 살아있는 친구 모두 무대에 올라 인사를 하고 싶어요."

윤 연출은 요즘 "10년만 젊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달고 산다. 명성황후와 영웅(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그린 작품)의 중국 공연부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새 작품 구상, 중국 작곡가 정율성을 소재로 한 중국 시장용 뮤지컬 제작까지. 몸이 열 개요,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명성황후 20주년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도 없다"는 그의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윤호진. 머리엔 세월의 흔적이 하얗게 내려앉았지만, 그를 움직이는 뜨거운 열정과 신념만큼은 20년 전 그대로인 듯하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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