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대행 빨리 졸업해야겠다.”
고건 국무총리가 지난달 20일 총리실 출입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말이다. 고 총리의 말처럼 지난 3월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63일 동안 그가 맡은 대통령권한대행 역할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자마자 사면법 처리문제가 불거졌고 탄핵결정 이전부터 계속된 촛불집회는 밤마다 계속됐다. 여기에 총선을 앞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ㆍ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특정 정당지지 발언까지 이어지면서 그의 국정조정 능력은 또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4ㆍ15총선을 잡음 없이 치러내는 것도 그에게 맡겨진 몫이었다.
고 총리는 자신에게 떠맡겨진 이 같은 책임을 특유의 친화력과 조정능력으로 매끄럽게 수행했다. 특히 탄핵정국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자칫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었던 4ㆍ15총선을 순조롭게 치러낸 것은 그의 뛰어난 국정수행 능력을 대변해줬다. 고 총리는 “4ㆍ15총선을 문제 없이 치러내는 것이 대통령권한대행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고 말할 정도로 총선관리에 신경을 썼다.
자신에게 맡겨진 이 같은 난제를 매끄럽게 처리한 고 총리는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에 대한 기각 결정이 내려진 14일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이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나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고 ‘재수총리’를 졸업한다는 것이 지난해부터 내가 해온 얘기”라며 “내 역할이 필요하면 관직에 나가고, 그 역할이 끝나면 물러나는 것이 내 진퇴의 원칙”이라고 말해왔다.
고 총리는 지난 75년 전라남도 지사를 거쳐 교통부ㆍ농수산부ㆍ내무부 장관과 서울시장을 역임했다. 85년에는 민정당 소속으로 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어 97년 국무총리를 지내고 지난해에 다시 35대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대통령권한대행직까지 수행했다.
그는 이처럼 전무후무할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40여년 몸담아온 공직과 완전히 작별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그는 당초 퇴임 후 미국 유학을 추진했지만 최근 한 모임에서 부친 고형곤(99) 박사의 건강상태를 걱정하면서 “장기간 외유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거나 대학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