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정부 두 차례 추가 매입에도 '쌀값 마지노선' 붕괴

연이은 풍년에 공급과잉 심화… 도매가격 15만원대로

쌀 변동직불금·격리비용에 조단위 혈세투입 우려도


정부가 5년 만에 두 차례에 걸쳐 24만톤의 쌀 매입에 나섰지만 쌀값 하락을 막지 못했다. 연이은 풍년으로 쌀 공급이 넘쳐나면서 쌀값은 4년 만에 심리적 마지노선인 80㎏당 16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도 벼 파종 시기 직후인 5월부터 이른 더위가 찾아오며 풍년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농가와 정부의 시름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쌀 매입에도 16만원선 붕괴=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조사한 쌀 상품 80㎏ 전국 평균 도매가격은 지난주 말 기준으로 15만9,200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1년 9월30일(15만6,000원) 이후 3년 8개월 만에 최저 가격이다. 월별 가격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1월 80㎏당 평균 16만5,600원선이던 쌀값은 추가 하락세를 이어가며 5월 16만1,512원까지 떨어졌다. 2011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다.


쌀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풍년으로 쌀 생산량이 늘어났지만 쌀 소비가 더 빠르게 줄어서다. 2013년 423만톤을 보였던 쌀 생산량은 지난해에도 418만톤을 기록해 시장 수요 예상치(400만톤)를 크게 웃돌았다. 반면 지난해 우리 국민 한 명당 연간 밥쌀 소비량은 65.1㎏으로 2009년(74㎏)에 비해 9㎏가량 줄며 매년 쌀 소비가 감소하는 추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피자와 스파게티 등 밀가루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데다 바쁜 일상으로 아침을 거르는 일도 잦아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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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원 이하면 재정 투입 눈덩이처럼 불어=문제는 국내 쌀 가격이 80㎏당 16만원 이하로 내려가면 쌀 변동직불금과 쌀 공급과잉 물량 매입 등으로 수천억 원의 혈세가 투입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80㎏당 16만원이 쌀값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정부는 쌀값이 2010년 14만원 아래로 떨어지자 2011년 쌀 변동직불금 7,501억원을 투입했고 두 차례에 걸쳐 공공비축물량(35만1,000톤)에 추가로 31만2,000톤의 쌀을 매입해 쌀값을 다시 16만원 위로 끌어올렸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수확기(10월) 이후 쌀값이 떨어지자 정부는 예산(1,641억원)을 300억원 초과한 1,941억원의 쌀 변동직불금을 지급했다. 변동직불금은 산지 쌀값이 정부에서 정한 쌀 목표가격 아래로 내려갈 경우 차액의 85%까지 보전해주는 제도다. 혈세 투입은 이것만이 아니다. 정부는 공공비축물량(37만톤)에 더해 지난해 10월과 올 4월 두 차례에 걸쳐 과잉공급된 쌀 24만톤을 매입하면서 약 5,000억원의 비용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쌀값 하락을 막는 데만 세금이 7,000억원가량 투입된 것이다. 이에 더해 쌀 재고 1만톤당 5억원의 관리비용이 드는 것을 고려하면 쌀 공급 조절책에 들어가는 재정은 더 늘어난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풍년이 이어져 쌀값이 더 떨어진다면 재정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공급조절 정책 한계·소비 늘려야=쌀값 하락이 구조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정책 효과가 먹히지 않고 수천억 원의 혈세만 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실장은 "정부의 쌀 매입은 돈이 드는데다 재고비용도 생기고 업체들은 정부 재고물량이 시장에 풀릴 것을 우려해 다시 낮은 가격으로 쌀을 시장에 내놓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올해 국민 한 명당 밥쌀 소비량이 64㎏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쌀 매입으로 줄어드는 공급보다 수요가 더 빠르게 줄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해 쌀농사마저 풍년을 보이면 쌀 변동직불금 지급과 공급과잉된 쌀 격리비용으로 많게는 조 단위의 혈세가 투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1조원의 세금이 덜 걷히는 등 국가재정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풍년 때마다 변동직불금과 쌀 추가매입 등으로 농가소득을 보전해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밥쌀 소비가 줄면 가공용 쌀 소비를 늘려 감소하는 쌀 소비를 끌어올려야 쌀값 하락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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