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노조전임자 급여 문제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로 해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이에 따라 구성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조합원 수에 따른 타임오프 상한을 의결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중소기업자의 반발이 만만찮은데다 정치권의 행태도 하 수상해 당장 오는 7월 시행에 먹구름이 끼는 듯하다.
필자는 타임오프제를 이론적으로 지지했지만 우리 노사와 정치권의 행태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 선의(善意)'에 기초한 것임을 깨닫고 스스로 입장을 수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가 전략적으로 주장해온 자율결정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이기에 현실적으로는 법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예외 없이 노조전임자의 급여는 노조가 자체적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담대한 개혁을 구상하고 또 주문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정부와 국회가 애써 마련한 타임오프제를 굳이 외면할 생각은 없다. 비록 비현실적이더라도 선의에 의해 법제를 마련하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기본이고 무엇보다 이 기본이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근거해 이뤄진 근면위의 결정도 현실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를 기대하기는 힘들며 특히 우리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기본 취지와 방향이 선의에 기초한 것이라면 앞으로 다듬어나가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다듬어나가기 위해서는 전략적 논쟁보다는 충실한 시행이 필요하다. 위대한 스승은 내로라하는 논쟁가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동계, 아니 노조 간부는 이번 근면위의 결정이 전임자 수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노동 탄압'을 운위하고 있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전임자의 급여를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의존하는 그러한 노조가 과연 자주적인가를 반문해보면 그 답은 금방 나온다. '자체부담' 원칙을 선도적으로 제기하지 못한 자신들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자는 노조전임자의 급여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 근면위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기 나름이다. 근면위가 결정한 것은 타임오프의 상한이지 하한이 아니므로 투명경영을 통해 상한선 내에서 형편에 맞는 수준으로 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사건건 정부에 의존하는 노사관계에서 명실상부하게 탈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정부는 법과 원칙으로 이러한 노사의 노력들을 지원해야 한다.
정작 먹구름은 정치권 일부가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들은 노조전임자 문제는 물론 타임오프제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마치 법정 근면위의 결정을 뒤엎을 권한이라도 있는 듯한 언동은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지난번 노조 관련법 개정 때 노사정 합의를 뒤엎은 것은 동의 여부를 떠나 부여된 입법권의 행사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정부 고시에 대해서는 국회의 '견제'를 폭넓게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련법의 명시적 규정에 근거해야 하고 이에 앞서 견제만이 아닌 '견제와 균형'의 기본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정확하지도 않은 정치적 계산으로 '재미'를 보려고 하거나 경쟁으로 균형감각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타임오프제는 근로를 전제로 한다. 몇몇 노조 간부에게 상한시간을 다 몰아줘 완전전임자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원래의 취지에 어긋난다. 이번 근면위 결정의 문제점은 상한선 설정을 완전전임자 수와 연계시킴으로써 그러한 잘못된 적용을 용인하고 현실적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데 있다. 근로를 하지 않는 완전전임자의 급여는 노조에서 전적으로 부담하고 타임오프는 근로를 하는 노조 간부에게 적용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근면위는 이 부분을 간과한 것 같다. 앞으로 타임오프제를 다듬어나가는 과정에서 이 부분을 바로잡아야 우리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이 합리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제 조합원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