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퇴임 일주일 만에 전직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내곡동 특별검사팀이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당시 관련 특검법에 따라 특별검사 한 명과 두 명의 검사보가 임명됐고 70여명의 인력이 투입돼 한 달간 검사를 수행했다고 한다. 내곡동 사저 매입이라는 단 한 건의 부동산거래를 규명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과 국가예산이 투입됐지만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은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변명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기업체 회계감사를 담당하는 공인회계사들은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회계감사의 권한과 책임 분명히
검사(檢査)와 감사(監査)가 이름은 다르지만 이미 발생한 사실에 대한 증거를 독립적인 입장에서 수집해 이해관계자들에게 그 결과를 알려준다는 면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실정법에 의해 수행되는 공적행위이고 증거수집과정에서 질문ㆍ실사ㆍ조회ㆍ대조ㆍ검산 등 감사기술들이 폭넓게 사용된다는 점도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회계감사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방대한 회계자료를 수사권한도 없이 조사하는데 감사결과에 대해서는 엄정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일 것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특검이 보여준 결과와는 딴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엔 약 2만개의 12월 말 결산법인이 공인회계사감사를 받는다. 전업 공인회계사가 1만명 정도이고 보통은 4~5인이 한 팀이 돼 감사업무를 실시하는 것이니 한 시즌에 팀 당 평균 10개 회사를 담당하는 꼴이다. 결산이 끝난 후 주주총회까지 2개월 남짓한 시간에 한 해 동안 축적된 거래기록과 계정잔액ㆍ재무상태ㆍ경영성과를 확인하고 재무제표가 적정하게 작성됐는지에 대한 판단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 해보이는 이러한 업무를 공인회계사들은 어떻게 수행할까.
전수검사가 불가능하니 표본감사를 한다. 연간 1만개의 매매거래가 있었다면 그중 200~300개 정도의 거래표본을 추출해서 감사절차를 수행하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쓰는 것과 같은 통계이론이 여기에 적용된다. 감사인에겐 검찰이나 경찰과 같은 수사권이 없다. 회사제시 자료의 위조나 변조여부를 조사하거나 경영자 부정을 적발하기 위한 절차 등은 아예 감사목적에서 제외된다. 그 대신 감사인은 재무제표 작성과정에서 내부통제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재무제표가 국제적으로 혹은 국내에서 인정되는 회계처리기준을 따랐는가를 확인한 후 회계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감독기관이나 정보이용자들이 감사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건이 터지면 제일 먼저 감사인에게 책임을 묻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돼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감사인이 소신껏 감사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고 일에 대한 합당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감사시장에서는 경영자가 '갑'이고 회계사는 '을'이다. 감사인 선정권을 경영자가 쥐고 있는 한 회계사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둘째, 제한된 시간 내에 효율적인 감사를 위해서는 충분한 감사시간과 보조인력은 필수조건이다. 감사대상회사가 증가하고 감사투입시간과 책임은 매년 늘어났지만 감사보수나 시간당 수임료는 지난 4년간 거의 변동이 없다. 젊고 유능한 회계사들이 감사업무를 3D업종으로 여기면서 현장을 떠나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
국가회계 종합정책 수립시행해야
12월 말 결산법인의 주주총회가 집중되는 3월을 맞았다. 총회 일주일 전까지는 감사보고서가 제출돼야 한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이 멀지 않았다는 시 구절이 있지만 겨울이 가는 것도 잊은 채 수많은 공인회계사들은 지금도 새벽까지 보고서에 매달리고 있다. 그 보고서에 공인회계사의 전문성과 감사인의 독립성이 함께 살아 있기를 바란다.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세계경제의 총아로 떠오른 한국이 아직도 회계경쟁력 면에서 최하위권을 헤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새 정부가 정확히 파악해서 정책수립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