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허생전으로 본 한중 미래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어영대장인 이완은 북벌의 묘책을 물으러 허생을 찾는다. 허생은 답 대신 이완에게 세가지 질문을 던진다. "지식외교 방책으로 와룡선생 같은 지략가를 임금에게 아뢰어 등용할 수 있는가." "종실의 딸들을 명나라 유민들에게 시집 보내 인맥을 만들 수 있는가." "중국에서 자유롭게 사무역을 할 수 있도록 청조의 승낙을 받아 지식인과 상인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게 할 수 있는가." 이완이 모두 "어렵다"고 답하자 화가 난 허생은 이완을 매우 꾸짖으며 칼을 찾아 그를 베려 한다.

허생의 세 가지 질문은 18세기 조선사회를 지배하던 북벌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됐다. 허생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청나라를 군사력으로 제압하겠다는 북벌론을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그는 청나라를 벌(伐)이 아닌 학(學)의 대상으로 보고 지식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복합외교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질문을 통해 전한 것이다.


대중 지식외교 폭 넓혀야

허생의 질문을 20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곱씹는 이유는 세계 무대에서 중국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한중 외교관계도 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때문이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으로 중국은 잠에서 깨어났다. 5세대 지도부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한 후 중국의 별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개명됐다. 경제적으로도 국내총생산(GDP) 6조달러를 넘어서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적으로도 미국과 신대국 관계를 설정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기술력과 첨단산업 분야도 중국은 어느새 우리와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다. 2011년 우리가 세계 수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빼앗긴 품목 26개 가운데 12개를 중국이 가져갔다. 조선산업은 지난해 11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에 수출 1위 자리를 내줬고 석유화학ㆍ철강ㆍ액정장치 등 주요 수출 품목도 중국에 밀리는 형국이다. 기술 우위의 지표라 할 수 있는 국제특허 건수도 지난해 중국에 추월당했다. 바야흐로 중국은 이제 경제력ㆍ군사력ㆍ기술력 모두 당(唐)ㆍ청(淸) 시대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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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활은 우리에게 대중 협력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을 이기려는 외교정책은 그 옛날 군사력을 앞세운 북벌론처럼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북벌에서 북학으로 전환을 꾀한 허생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중국과의 새로운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허생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지난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이 이뤄낸 성과가 해답이 될 수 있다. 먼저 지식외교의 중요성을 역설한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박 대통령은 유창한 중국어 실력과 중국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중국통'임을 증명하며 중국인들에게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이를 통해 '한중 미래 비전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며 중한몽(中韓夢)과 정열경열(政熱經熱)이라는 화두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했다.

중시장 진출 국내경제 도약 지렛대로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중국 내수 시장 진출을 꾀했던 두 번째 물음은 경제사절단이 해결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방중 경제사절단은 중국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지 정ㆍ재계와 끈끈한 인맥 형성에 힘을 쏟았다. 중견ㆍ중소기업들도 한중 비즈니스 포럼, 내수 시장 개척 상담회 등을 통해 대규모 계약을 이끌어내며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자유무역 활성화라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진전시켜 양국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양국 정상의 공동 선언문에 담았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양국은 수교 21년 만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이제 한국 경제가 재도약을 할지,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될지는 기업과 기업인에게 달렸다. FTA, 중국 내수시장 공동진출이라는 지렛대와 정치ㆍ외교적 안정이라는 지렛목을 선물 받은 기업인들이 '긴 지렛대와 지렛목만 있으면 지구를 움직일 수 있다'는 말처럼 세계 경제를 들어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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