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유럽위기 스페인 확산] 기업·공공기관 외화 미리 확보했지만… 사태 장기화땐 안심 못해

■ 짙어지는 금융시장 불확실성<br>수개월 버틸 여력 불구 조달 비용은 높아져<br>지나치게 느긋한 자세 벗어나 만일 대비 해야

외환은행 본점 외환담당 직원이 시중은행으로 반출할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그렉시트(그리스 유로존 탈퇴)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되면서 해외 채권 발행을 연기하는 등 우리 기업의 해외 자금조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경제DB


외환은행은 최근 외화자금 실무자를 미국 등 해외로 파견했다. 2년 만에 처음 해외 채권 발행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해외 자금 시장 분위기가 어떤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외환은행이 내놓으려는 물량은 최소 5억달러. 발행시기는 오는 6월 중순이나 하순 정도로 저울질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 요즘 그리스ㆍ스페인 등의 유로존 사태가 악화되자 실무자들은 초긴장 상태다.

유로존 사태의 불똥은 외환은행뿐 아니라 국내 주요 금융기관과 대형 공기업으로도 튀었다. 지난 1ㆍ4분기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제위기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우리 기업ㆍ기관의 해외 발행 채권 금리는 하향안정세를 탔는데 2ㆍ4분기 후반 들어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수자원공사가 최근 외화채권 발행을 연기한 것은 자금 시장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당장 다음달 중순께 외화채권 발행에 나서려 했던 산업은행도 한층 시계가 흐려진 자금 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업은행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기업 중 하나라는 점에서 자칫 적정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는 데 실패했다간 적지 않은 파장을 감당해야 하는 탓이다.

물론 외환 당국자들은 "해외 시장 여건이 나빠졌다고 해도 자금줄이 막힌 게 아니라 조달 비용이 높아졌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국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등이 최근 해외 자금 시장 상황에 신경을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사정이 나빠서가 아니다. 사실 우리 금융회사나 일반 업체는 지난해 워낙 많은 물량을 해외에서 조달해 비교적 여유가 있다. 하지만 해외 투자가의 사정이 워낙 여의치 않아 혹시나 시장 여건 악화가 장기화되지 않을지 재고 있는 것이다.


김대영 우리투자증권 DCM그룹장은 "우리가 달러 채권을 발행하면 주로 유럽이나 미국의 투자자들이 살 텐데 요즘 유로존 문제 때문에 유럽 투자가들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며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수요 측(투자자) 사정에 따라 자금조달 비용(외화채권 발행 금리)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현재 우리나라의 외화채권 지표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20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 가산금리를 보면 올해 1월 221bp(1pb=0.01%)이던 것이 점진적으로 하락해 이달 25일 현재 183bp로 안착했다. 물론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최근 올라 지난 28일 139bp를 기록했지만 이는 1월 말의 150bp보다 여전히 현지 낮은 수준이다. 김 그룹장은 "유로존 사태가 재부각됐지만 우리의 CDS프리미엄이나 외평채 가산금리 모두 당분간 안정적으로 움직일 것 같다"고 내다봤다.

당분간 자금조달 비용이 오른다고 해서 당장 우리 기업이나 기관이 외화 경색에 빠질 위험이 거의 없다는 게 금융권과 정부의 분석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을 독려해 선제적으로 확보한 외화자금이 현재 누적액 기준으로 200억 달러를 넘었다"며 "이들 자금은 대부분 3~5년 만기로 조달했기 때문에 당분간 외화자금 조달선이 수개월간 끊겨도 최소한 수개월은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올해 우리 기업이나 기관이 차환(만기연장)해야 하는 외화채권이 총 200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이 역시 지난 3년간 평균치 수준"이라며 "이러다 보니 금융사들이 너무 보수적이다 싶을 정도로 해외 자금조달에 신중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 은행은 해외 자금조달 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느긋하다. 자금조달이급하지 않으니 금리가 오르면 발행을 당분간 미루면 된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채권발행자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여지가 있는데 굳이 지금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물면서 외화를 조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공기업이나 주요 대기업도 비슷하다.

유럽ㆍ미국의 자금 시장을 당분간 대체할 또 다른 자금 시장이 있다는 점도 우리 기업과 공공기관의 숨통을 다소나마 틔워주는 부분이다. 일명 사무라이본드, 즉 엔화 표시 채권시장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무라이본드 시장에 투자 수요는 아직 충분한데 일본 대지진 등의 여파로 도쿄전력과 같은 현지 기업ㆍ기관의 채권공급이 위축됐다"며 "이에 따리 상대적으로 우리 기업이나 기관이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해 소화시킬 수 있는 틈이 생겼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국내 민간금융사 중 처음으로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기는 7월 첫째주나 둘째주 정도로 전해지고 있으며 발행 규모는 300억엔 이내 수준인 것으로 관측됐다. 그에 앞서 이달 17일에는 수출입은행이 아시아 기관 중 최대 규모인 1,000억엔어치의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유럽 사태 악화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사무라이본드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우리 기관이나 기업이 지나치게 느긋하게 자금조달 비용을 재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병권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