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압력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됐던 고유가가 오히려 디플레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디플레 우려가 일본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다 위앤화 평가 절상 압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저가 공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전 세계적인 디플레 확산 위기감은 그 속도감을 더해가고 있다.
◇유가와 물가는 별개=그 동안 유가 상승은 디플레를 해소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고, 나아가 실물자산의 가치가 상승할 경우 개인들의 호주머니에 숨어있던 돈도 차츰 밖으로 나오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던 것. 실제로 일본의 경우 이러한 기대감으로 고유가를 어느 정도 반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청사진은 현실적인 근거 없는 장미빛 전망이라는 분석이 늘고 있다. 3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유가상승이 디플레와 경기침체의 위험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을 근거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2.5%로 낮췄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유가 상승을 제품가격 상승에 그대로 반영하기 힘들고, 이로 인해 기업들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 니코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이코노미스트인 후지 도모코 역시 “지금 상황에서의 유가 상승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기 보다는 기업들에 또 다른 비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령 유가상승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이것이 디플레 해소를 위한 단초를 제공하기 보다는 오히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물가만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중국 저가 공세도 디플레 압력 가중= 중국의 값싼 수출공세와 아시아 국가들의 중국 현지공장 설립 붐 역시 여전히 디플레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3일 일본 뿐 아니라 홍콩ㆍ타이완ㆍ싱가포르 등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에서 소비자 물가가 하락하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 본토와 물품이나 노동력 이동이 자유로운 홍콩의 경우 지난 해 소비자 물가 하락률이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큰 전년 대비 마이너스 3.0을 기록했다. 타이완 역시 값싼 중국 일용품과 옷가지들이 흘러 들오는데다, 정보기술(IT) 관련 생산거점들이 중국 본토로 이전하면서 산업공동화에 따른 부동산 가격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소비자 물가는 일본이 0.9%, 싱가포르가 0.4%, 타이완이 0.2% 각각 떨어져 아시아 국가들의 디플레 조짐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최윤석기자 yoep@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