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젠 펀드 운용도 시스템… '별' 지고 '모델' 뜬다

리서치 활동 통해 해당기업 분석

편입종목·비중 등 미리 정해놓아 개인 자의적 판단 따른 실수 차단

개별 펀드운용에 최대 70% 반영

"MP는 기본적인 수익률만 보장… 차별화 위해선 매니저 역할 중요"



지난 5월 한화자산운용에서 운용하는 '한화자랑스러운한국기업연금전환펀드'와 '한화자랑스러운한국기업펀드' '한화1조클럽펀드' 등의 주식형 펀드가 나란히 860여개의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월간 수익률 2·3·4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3개 펀드의 수익률은 9~11% 수준이었다. 이전까지 한화자산운용의 주식형 펀드는 국내 펀드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실제로 2011년 푸르덴셜자산운용과의 합병 후 한화자랑스러운한국기업펀드는 국내 주식형 펀드 중 수익률이 하위 10%에 속한 펀드였다. 하지만 2014년부터 수익성이 부쩍 개선되더니 올해 들어서는 상위 4%에 속하는 우수한 펀드로 변모했다. 한화자산운용은 주식형 펀드의 수익성 개선이 2011년 이후 정비해온 '모델 포트폴리오(MP)'의 수익률이 개선된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한화자산운용 관계자는 "리서치와 운용이 결합된 MP를 구성해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실수를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수조원씩 자금을 끌어모은 유명 펀드에는 스타 펀드매니저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이 때문에 펀드매니저가 회사를 옮기면 해당 펀드에서는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펀드 수익률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현상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펀드 운용도 '개인기'보다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별(스타 펀드매니저)'이 지고 '모델(MP)'이 뜬다는 말로 표현된다.


요즘 자산운용사들은 앞다퉈 MP를 통한 펀드 운용을 강화하고 있다. 과거 펀드 운용에 참고하는 정도로만 사용됐던 MP는 이제 투자에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다. MP는 펀드를 운용할 때 담아야 할 종목들을 미리 선별해놓은 일종의 모범 답안이다. 운용사의 운용 철학을 바탕으로 리서치 활동을 해 해당 기업을 분석하고 펀드의 성격에 맞게 편입해야 하는 종목과 비중을 미리 정해놓은 일종의 투자 '틀'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운용사들은 외부에 자신의 MP가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조심스러워한다.

한 자산운용사 매니저는 "가장 곤란할 때가 펀드 포트폴리오를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라며 "예전에는 편입된 종목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포트폴리오를 조금이라도 알려주면 회사의 운용 전략을 알려주는 셈이 돼 상당히 꺼려진다"고 말했다.

운용사들은 이렇게 마련된 MP를 기준으로 삼아 개별 펀드에 적용하게 된다. MP에 담긴 종목은 운용사마다 모두 다르다. 운용사가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A운용사의 MP가 삼성전자와 한국전력·SK하이닉스·현대차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로 구성된다면 B운용사의 MP는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을 제외하거나 비중을 줄여 담을 수 있다. 어떤 운용사의 MP에서는 올 들어 강세를 보이는 헬스케어 관련 중소형주가 완전히 배제될 수도 있는 반면 또 다른 운용사의 MP에는 헬스케어 관련주의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MP를 잘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기업 리서치 활동이 필수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리서치 역량 강화를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인력 충원에 힘쓰고 있다.

MP를 통한 펀드 운용에 가장 적극적인 국내 운용사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뿐 아니라 성장형 MP를 비롯해 가치주·헬스케어와 같은 스타일 MP 등 10여개의 MP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2006년부터 자체 리서치 조직을 갖췄으며 현재 리서치 인력만 17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도 커졌다.


운용업계 1위인 삼성자산운용도 지난해 MP를 도입하면서 올 초 사내 리서치팀을 독립 조직인 리서치센터로 바꿨으며 한국투자신탁운용도 주식·채권·대안 등으로 산재해 있던 리서치 조직을 하나로 통일하는 한편 경력직원을 채용했다. 또 하이자산운용을 비롯한 중소형 운용사들도 리서치 역량 강화를 위해 조직 정비와 인력 충원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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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운용사들이 리서치 인력을 충원하려고 하는 것은 과거 참고로만 사용되던 MP가 실질적으로 펀드 운용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리서치 역량이 운용사의 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운용사들이 MP 활용도를 높이는 것은 현재 자본 시장 상황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매니저 개인이 기업을 분석하고 펀드 편입 종목을 발굴하는 역할을 전담하기가 녹록지 않다. 새롭게 부상하는 기업들은 많은데 이를 매니저 개인이 모두 살펴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신규 펀드 출시가 급증했지만 펀드매니저 수는 변화가 거의 없는데다 순자산 기준 50억원 미만의 소규모 펀드가 부쩍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매니저 개인이 운용을 담당하는 펀드는 더욱 늘어나고 소규모 펀드의 경우 매니저의 펀드 운용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다 관심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용 중인 펀드는 2012년(6월 말 기준) 3,399개였지만 올해는 3,584개로 200개가량 늘어난 데 비해 펀드매니저는 635명에서 627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펀드 숫자는 예전에 비해 부쩍 늘었는데 매니저 수는 크게 변동이 없다"며 "자투리 펀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데 MP는 이런 펀드를 운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매니저의 역량을 여전히 중요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보통 운용사는 MP를 마련하면 비슷한 유형의 여러 펀드에 공통적으로 적용한다. 예컨대 한화자산운용의 주식형 펀드 MP는 '한화자랑스러운한국기업펀드'뿐 아니라 '한화코리아레전드펀드'에도 함께 적용된다. 하지만 같은 운용사의 MP라도 펀드마다 수익률은 달리 나타난다. 보통 MP를 개별 펀드에 반영할 경우 복제율은 최대 70%를 넘지 않는데 나머지 30%가 바로 매니저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한 중소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MP는 기본적인 수익률을 보장해줄 뿐 추가적이고 차별화된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여전히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스타 매니저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매니저에 따라 투자자금이 몰리거나 빠지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로 민수아 삼성자산운용 밸류주식운용본부장은 8년간 '삼성중소형FOCUS펀드'를 운용하면서 올해 수익률(13일 기준) 26.98%를 기록해 유형 평균 수익률(24.41%)을 넘어선 상태고 'KB밸류포커스펀드'를 운용하는 최웅필 KB자산운용 밸류운용본부장 역시 올해 수익률이 19%를 넘어서며 유형 평균의 2배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다. 아울러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지난달 '메리츠코리아스몰캡' 펀드를 선보이며 두 달도 안돼 3,135억원을 끌어모았고 수익률 역시 설정 후 9%가 넘는 성과를 기록했다.

아울러 MP 활용도가 대형 운용사에 비해 낮은 중소형 운용사들의 최근 펀드 운용 성과가 월등히 좋은 것도 스타 매니저의 역할을 강조하는 근거 중 하나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가장 좋은 운용사는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101.97%)이었으며 라자드코리아운용(76.19%), 메리츠자산운용(61.72%) 등 중소형 운용사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앞으로 자산운용업계가 더욱 성장하게 되면 MP의 활용도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의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은 기업이 커지면 그만큼 운용자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고 또 투자 대상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확대될수록 리서치와 MP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펀드 운용은 MP를 기반으로 30~40% 정도 되는 매니저들의 역량에 따라 성과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특히 퇴직연금 등 연금 성격의 자금이 늘어나고 해외 투자가 활성화되면 개인의 능력보다는 MP의 필요성이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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