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노란봉투 압박에 3개지주 인수 선회

●방향 바뀐 저축은행 인수전<br>정부, 연계영업 허용으로 불만 해소 나서


지난 2003년 카드 사태 때 김석동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국장은 은행회관에 주요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모은 뒤 '노란봉투'를 하나씩 돌렸다. 봉투에는 카드사 부실을 막기 위해 은행별로 책임져야 할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은행장들은 '관치'라며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돈을 각출했다. 그 결과 카드 사태는 안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경제위기 때 '관치'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또다시 '노란봉투'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마무리를 위해서다. '노란봉투'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현재 돈이 있는 기관은 4대 금융지주뿐이니 하나씩 가져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고육지책이다. 유럽발 경제위기로 국내경제가 극도로 위축된데다 시중은행과 카드사ㆍ대부업체 등에 끼어 살길을 찾지 못하는 저축은행을 껴안을 곳은 사실상 금융지주사밖에 없다. 건설사들에 저축은행을 넘기자니 제2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사태가 우려되고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비리 혐의로 쇠고랑을 차는 상황에서 감히 저축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설 개인이 있을 리 없다.

금융지주사들은 끙끙 앓고 있다. 지난해 당국의 강요에 못 이겨 저축은행 한 곳씩을 억지로 떠안았는데 추가로 떠맡으라는 당국이 야속하다.


무엇보다 저축은행 인수 효과가 거의 없다. 지난해 금융지주사가 인수한 저축은행들은 올해 1ㆍ4분기까지 대부분 적자를 기록했다. 인수 이후 추가로 드러난 손실 보전을 놓고 한참이나 승강이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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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는 무조건 '복종'이다. 정부의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도 후환이 두려워 저축은행 인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맏형' 격인 KB금융지주 정도가 '앙탈'을 부리고 있지만 우리금융지주가 총대를 메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없는 처지다.

금융당국은 당근책을 내놓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금융지주들의 불만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다. 은행과 저축은행 간의 '연계영업' 허용이 그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금융 당국 내에서는 연계영업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주류를 이뤘다.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이 은행 지점을 이용해 연계영업에 나서면 가뜩이나 위축된 다른 저축은행들의 영업이 타격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금융감독원 내 금융지주 담당 부서에서 "법적으로는 연계영업을 허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으나 저축은행 담당 부서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금감원 저축은행 담당자는 "연계영업을 허용해달라는 금융지주의 요구는 땅 짚고 헤엄치겠다는 것"이라며 절대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금융지주 외에는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을 인수할 것이 없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으면서 금감원 상급기관인 금융위가 다시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연계영업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금융 당국 내에서조차 이견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금융지주사가 또다시 저축은행을 인수할 경우 향후 저축은행 업계는 금융지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들이 살 빼기에 여념이 없지만 조만간 금융지주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며 "살아남은 다른 저축은행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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