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말부터 삼성그룹을 뒤흔들며 경영차질 사태를 가져온 특검수사가 사실상 종료되자 다음주에 밝혀질 ‘삼성의 쇄신카드’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된다.
재계 주변에서는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으려면 그룹 전체를 장악ㆍ통솔하는 리더십이 최우선 전제”라며 “검찰의 기소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이건희 회장이 법적 대응과 병행해 그룹 경영진 교체 및 재배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직접 챙기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17일 특검의 수사발표 직후 3층 기자실을 찾은 이순동 전략기획실 사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짤막하게 “다음주 쇄신책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삼성 수뇌부가 일정을 못박으면서까지 쇄신책을 내놓겠다고 천명한 것은 심각한 경영공백 상황을 불러온 이번 사태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수습하겠다는 강한 의지 표명이다.
특히 ‘다음주’라고 일정을 못박았다는 사실은 그동안 그룹 경영의 큰 틀만 잡아가던 이 회장이 이번 ‘삼성 쇄신’에 대해서만큼은 직접 고삐를 거머쥐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 읽혀진다.
◇‘쇄신안 어떤 내용 담기나’ 촉각=이 회장이 지난 11일 “경영체계와 저를 포함한 경영진 쇄신”을 강조한 데 비춰 삼성의 쇄신안은 상상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발 각종 의혹이나 문제점에 대해 가장 우선적으로 지목된 ‘삼성 전략기획실’에 대해서는 인적 쇄신은 물론 역할 재조정 작업이 불가피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전략기획실은 현재와 같은 ‘이 회장 대행’으로서 무소불위의 결정력을 상당 부분 제한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 수준도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점에서 쇄신방안에는 ‘기업시민 삼성으로서의 청사진’은 물론 그룹 지배구조 승계방식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공통분모’가 담겨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모든 쇄신의 방향성을 잡아가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의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일선 후퇴’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영 현안 산적…정상화 가속도 낼 듯=삼성그룹은 쇄신안 확정과 더불어 그동안 지연됐던 인사를 늦어도 오는 5월 초까지 단행하는 등 시급한 경영 현안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당초 5월 부장급 이하, 7월 사장단ㆍ임원 인사를 하기로 했던 계획을 전면 수정, 이르면 이달 말에 인사를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황태선 삼성화재 대표이사 등 일부 계열사 사장들이 교체될 수 있어 전략기획실과 주요 계열사를 아우르는 최고 경영진 인사가 시행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뇌부 인사는 또 전략기획실 축소 내지 개편과 맞물려 있어 대대적인 경영진 교체바람이 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올해 투자와 신규 채용도 확정하고 올해 경영목표 달성을 위한 임직원 독려에도 나설 태세다. 25일 실적발표를 하는 삼성전자가 투자 규모를 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룹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약 3조~4조원 늘어난 25조원 안팎의 투자방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채용 규모는 지난해 6,850명을 상회할 확률이 높다.
◇“이쯤에서 마무리돼야” 재계 한목소리=재계는 삼성특검의 수사발표 내용을 확인한 후 일제히 “이쯤 했으면 이제는 삼성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삼성특검 수사에 대한 성명을 내고 “이제는 삼성 관련 모든 의혹이 특검 결과로 밝혀진 만큼 더 이상의 논란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총은 또 “향후 삼성특검 수사 결과에 대한 법적판단이 하루속히 마무리돼 삼성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이뤄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경제계는 삼성그룹의 국내외 경영 전반에 부담이 됐던 특검수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삼성그룹의 경영활동이 정상화되고 협력업체의 경영 어려움도 조속히 해소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기업경영에 악영향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재계에서는 또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내용 대부분이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로비나 분식회계에 대한 물증도 제시하지 못했고 특검에서의 진술도 앞뒤가 맞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악의적인 비방 때문에 삼성그룹이 큰 손실을 입은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수뇌부 대거 기소에 "경영차질 장기화" 침통
17일 삼성그룹 임직원들은 오후2시 TV를 통해 특검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삼삼오오 모여 곧 나올 쇄신책과 인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아울러 임직원들은 그룹 총수를 비롯, 수뇌부들이 대거 기소된 데 대해 걱정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특검수사 결과 발표 직후 삼성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수뇌부가 대거 기소돼 매우 침통하다”며 “그룹 경영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법원의 최종심 판단까지 경영차질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중장기 경영계획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삼성 임직원들은 해외 언론들이 일제히 특검의 기소 사실을 보도하면서 또다시 삼성 브랜드가 큰 타격을 입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다만 김용철 변호사가 당초 제기했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정관계 불법로비 등이 모두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나자 ‘사필귀정’이라며 안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