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은 이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현대사를 규정하는 대사건이 됐다. 우리는 '1997년' 하면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떠올린다. 그 여파로 재정 긴축과 구조조정 등 국민 생활과 기업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이 때문에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인데도 그 해를 대표하는 상징어가 됐다. '2014년'에도 일이 많겠지만 우리는 '안전'의 중요성을 느꼈으므로 이 해를 세월호 침몰로 기억할 것이다. 1997년의 기억은 2001년 8월에 IMF에 빌린 돈을 갚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차관을 다 갚았지만 구제 금융으로 겪은 상흔은 아직도 낫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도 머지않아 침몰의 원인이 밝혀지고 원인 제공자는 응분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세월호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 구제 금융처럼 세월호도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한숨짓게 만들었기 때문에 상처의 치유가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의 기억을 지배할 2014년의 상흔을 돌보기 위해 인문학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침몰은 단순히 처벌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급격한 변침, 화물의 과적, 복원력 상실 등이 침몰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침몰과 희생자의 발생은 세월호가 인천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출항 이전에도 세월호는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었고 내부에서는 그 사실을 경고했다. 원인을 소급하다 보면 노후 선박의 구입과 개조, 그리고 관리·감독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 있다. 선박의 구입과 개조, 운항과 안전 등의 모든 과정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들어 있다. 이 욕망이 승객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됐다. 아울러 해운조합과 관계기관마저 이러한 욕망을 제대로 규제하고 감독하려고 했는지 의심이 든다. 즉 지켜야 할 규칙을 무시하면서도 "별일이 없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안주해왔던 것이다. 끔찍한 재난을 가져올 정도로 이윤을 향한 욕망이 이렇게 괴물처럼 자라게 됐을까? 운동 경기에도 규칙이 있듯이 기업 경영에도 금도가 있다. 규칙이 있기 때문에 스포츠에는 승패가 나뉘지만 감동이 있다. 금도가 있기 때문에 경영에 치열한 경쟁이 있지만 상대를 믿고 소비자에게 안심을 줄 수 있다. 반칙과 탐욕이 싹트는 순간 규칙과 금도는 거추장스럽게 보일 뿐 존중되지 않게 된다.
'장자'에 보면 의인화된 천근(天根)이 의인화된 무명인(無名人)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길을 물었다. 무명인은 처음에 대답을 피했지만 천근의 거듭된 요청에 못 이겨서 "마음을 담담한 상태에 두고 기(氣)를 드넓은 상태에 두고서 모든 일을 자연에 따라야지 사심을 집어넣지 말라!(無容私)"고 대답했다.('응제왕'편) 지켜야 할 금도와 규정을 지키지 않으려고 할 때부터 마음이 뒤끓고 기는 작아지고 일을 억지로 풀어가려고 하게 된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이 담담하고 넓을 수가 없다. 이렇게 '용사'가 받아들여지면서 안전이 무시되고 사건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정작 사고가 생기면 승객을 돌아볼 여유 없이 혼자 살려고 기를 쓰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무명인은 사람이 자연에 손댈 수 없는 한계를 말한다. 손댈 수 없는 영역을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담심(淡心)이고 무용사이다. 날씨가 덥다고 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닐 수가 없다. 우리는 비용 절감을 외치며 규제의 철폐만을 노래할 것이 아니라 적정한 규제를 옷으로 갖춰 입을 필요가 있다. 그 옷은 여과되지 않는 욕망을 막아주는 보호막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