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주말 와이오밍주 산장에서 재임기간의 오류에 대한 변명이자 고백을 토해냈다.그는 통화정책으로 자산거품을 막을수 없다며, "금리를 급격하게 올릴 경우 경제가 나빠지고, 서서히 올릴 경우 일정시간이 지나 주가가 또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의 발언은 금리인상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채 말로만 주가 거품을 경고함으로써 증시의 거품 팽창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금리 수단이 만능이 아님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린스펀은 통화주의자로,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거시경제의 사이클을 조절할수 있다는 강한 신념의 소유자다.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그는 금리를 급격하게 내리면 미국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린스펀은 지난해 의회 증언에서 "통화정책은 각기 다른 시기에 여러 채널을 경유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 금리인하가 결국엔 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FRB가 11차례에 걸쳐 단기금리를 4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는 아직 살아나지 않고, 증시는 지난 5개월동안 곤두박질쳐왔다.
16년째 FRB 의장을 맡고 있는 76세의 노익장은 스스로 통화 정책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FRB 내부에서는 이미 지난해봄부터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논의가 제기돼 왔다. 중앙은행 사람들은 'M1', 'M2'등 통화총량 개념을 사용하며 돈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는 것으로 경기를 조절할수 있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만능 요술방망이는 아니다. 증시 투자자들의 탐욕과 패닉, 기업인들의 투자과열 등 사회심리적 현상을 통화조절장치로 막을수 없다는 사실은 그린스펀의 고백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린스펀의 발언내용은 한국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연초에 금리를 올렸는데도 부동산 가격은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올랐다. 금리를 급격하게 올릴 경우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경제 현실이 미국과 다르긴 하지만, 그린스펀은 부동산 과열 진정책으로 강력한 투기억제책, 아파트 공급 확대등 비통화주의적 수단을 선행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