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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의 울분을 일으킨 '윤 일병 집단학대 사망사건' 이후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각양각색의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들이 하나 마나 한 소리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국군 사병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육군은 용산 육군회관에서 "병영 내에서 우리 병사들에게 스마트폰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병사들의 고립감을 완화시킨다는 명분에서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보여주기 식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군 내부에서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운동을 해온 정두근(62) 예비역 중장은 이를 두고 "최근 일어난 사고가 스마트폰이 없어서 일어난 것이냐"라면서 "(정부 대책은)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2012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11층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고생 자살사건의 발단이 이른바 '카톡 왕따'였던 점을 감안하면 더 설득력이 높아진다. '카톡 왕따'란 여러 명이 스마트폰 대화방에서 한 명에게 지속적으로 욕설을 쏟아내는 것을 말한다. 한 명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병사의 스마트폰 사용은 또 다른 고립을 초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장교들도 내부 악습으로 자살하는 사고가 다수 발생하고 있는 것도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의 방증이다.
게다가 군 저변에 깔린 문화를 총체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마당에 최근 일어난 사고들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문화융성위원회에서 "바른 인성과 창의성을 갖춘 전인적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며 "이것은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군내 가혹행위와 인권유린 등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 방안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역시 이날 윤 일병 사망과 관련해 "교육이 문제"라고 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는 '까라면 까라' 식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군대 내 폐쇄적인 시스템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전가하는 격이다.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분대장을 제외한 병사끼리는 명령이나 지시·간섭을 할 수 없도록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 병영생활행동강령은 분대장을 제외한 병 상호 간에 지시를 할 수 없게 명시하고 있다. 많은 일선 부대에서는 점호시간 때 이 같은 강령을 크게 외치는 퍼포먼스도 취하고 있다. 반면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무기명 신고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군 부대 내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 등도 무기명으로 진행한다. 문제는 이 같은 무기명 조사 결과가 의도치 않게 공개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즉 설문 등이 실시되고 난 후 지휘관 등이 특정인을 눈에 띄게 호출하는 등 누구나 다 눈치 차릴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독서교육' '부대 재배치 청구권 부여' 등 하나 마나 한 대책이 나오고 있다. 이에 많은 전문가들은 군대 특유의 폐쇄성 문화와 일방적 소통구조 등 전반적인 군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직장인 김모(42)씨는 "군이나 국회에서 내놓은 대책들은 한결같이 현장과 동떨어진 것들뿐"이라며 "전국민이 공감하는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의 공분만 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오는 12월 '병영문화 혁신안'을 내놓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