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위대한 과학자'의 또 다른 이름 천재수사관 뉴턴

■ 뉴턴과 화폐위조범 (토마스 레벤스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뉴턴, 영국 조폐국 감사로 일하며 비효율적 주화제조 공정 개선

위폐 범죄조사도 탁월한 성과… 악명높던 위조꾼 챌로너와 일전

홈즈 뺨치는 수사력 흥미진진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만유인력의 원리를 생각해냈다는 천재, 우리가 익히 잘 아는 17세기 영국 과학자 아이작 뉴턴. 그는 45세 때 운동 3법칙을 담은 '프린키피아'를 출판했고, 그는 당대에 '살아있는 위인' 반열에 올라선다. 하지만 그가 35년째 머물던 케임브리지를 떠나, 1696년 53세 때 런던의 영국 조폐국 감사직을 맡았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미국 MIT 대학원 과학저술과정 책임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인 토머스 레벤스는 여기에 주목했다. 뉴턴의 과학사적 업적을 정리하는데 지면을 할애하기보단, 뉴턴의 전기와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 조폐국 문서와 당시 유명했던 위조화폐 범죄자 윌리엄 챌로너의 재판 기록까지 샅샅이 뒤진다. 그리고 뉴턴과 챌로너 사이 2년여 이어진 전쟁을 재구성해낸다. 꼼꼼한 그는 책 말미 주석과 참고문헌 표기에 전체 지면의 1/5을 할애한다. 명탐정 셜록 홈즈와 모리어티 교수의 대결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지만 절대 소설이 아니라는 웅변이다.

당시 영국은 현대적 의미의 화폐, 지폐가 등장하던 시기였지만, 화폐 위조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금화의 10%가 가짜라는 게 통설이었고, 당대의 정치철학자인 존 로크를 비롯한 지식인들 역시 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이러한 시기 정부에 금융정책을 조언하던 뉴턴은 결국 조폐국에 감사를 맡게 된다. 그는 빠르게 업무를 습득해 조폐국장의 업무를 사실상 대행했고, 늘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던 비효율적인 주화제조 공정을 개선했다. 반년이 지나지 않아 생산량은 6배 이상 늘어났다. 위조화폐 조사관 역할도 맡았던 그는 범죄자에 대한 협박과 회유, 거래를 개의치 않았고, 이듬해면 정보원과 첩보원, 길거리 건달과도 협력하는 런던 역사상 가장 유능한 범죄수사관이 된다.


그런 뉴턴의 상대는 범죄자 윌리엄 챌로너. 역시 시골 출신으로 금속공장에서 일하다 런던 화폐위조에 빠져들었고, 크고 작은 일로 체포됐지만 번번이 경쟁자에게 누명을 씌우며 빠져나올 만큼 수완 좋은 사내였다. 그가 위조화폐로 챙긴 돈은 3만 파운드, 지금 계산으로 400만 파운드(약 69억 원)에 달한다. 정부 재정과 주화 제조술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로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범죄행각 6년여 사이 적어도 2명을 살해했지만 덜미가 잡히지 않았다.

관련기사



대담한 챌로너는 조폐국 부패 조사위원회를 이용해 아예 자신이 조폐국으로 들어가려는 시도까지 하지만, 뉴턴은 어렵게 이런 음모를 막아낸다. 결국 재정적으로 궁지에 몰린 챌로너는 조폐국에 대한 탄원서까지 접수시켰고, 이제 화가 날 대로 난 뉴턴과는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 된다.

그 와중에 영국이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 '맥아복권'을 위조하려던 챌로너가 드디어 뉴턴의 촘촘한 그물망에 걸려든다. 뉴턴이 꼼꼼하게 선정한 증인이자 화폐위조 공범 6명은 빈틈없이 챌로너를 옭아맸고, 법정은 신속하게 교수형을 선고한다. 국왕의 얼굴이 새겨진 복권을 위조한 '반역자' 챌로너는 스코틀랜드의 반란자 윌리엄 월리스처럼 극단적으로 잔혹하게 처형된다.

그리고 뉴턴은 조폐국 입성 3년도 못채운 1699년 말 조폐국장 자리를 차지하고 첫 해 3,500 파운드를 벌어들인다. 당시 케임브리지 교수 연 급료는 고작 100 파운드였다. 1만 8,000원.


이재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