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지갑 안 여는 가계… 여윳돈 30조 육박

3년만에 최대… 저금리·저물가에도 소비심리 갈수록 위축


가계가 돈을 안 써도 너무 안 쓰고 있다. 1·4분기 여윳돈이 30조원에 육박해 비교 가능한 지난 2013년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자금순환 동향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가계(비영리단체 포함)가 29조6,000억원의 자금잉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4·4분기(14조5,000억원)의 2배가 넘는 것이며 2013년 1·4분기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옛 국제기준(1993 SNA) 통계와 비교하면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2년 1·4분기(31조4,000억원),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4분기(33조3,000억원) 이후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잉여자금은 가계가 예금이나 보험·주식투자 등으로 굴리는 돈(운용자금)에서 빌린 돈(조달자금)을 뺀 것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돈을 쓰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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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분기는 지난해 두 차례 금리인하와 저유가 효과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 시점이었다. 또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 시행,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도 기대됐었다. 하지만 막대한 가계부채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 불투명한 노후에 대한 걱정이 더 커 소비가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1·4분기 2인 이상 가구 평균 소비성향은 72.3%로 1·4분기 기준으로는 통계가 집계된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투자의 주체로 만성 '자금부족'을 보이는 기업조차도 1·4분기에는 돈 가뭄이 다소 풀렸다. 지난해 4·4분기 7조3,000억원 부족에서 올 1·4분기 4조4,000억원 부족을 기록했다. 비교 가능한 2013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부족분이다. 통상 기업들은 1·4분기에 투자를 집행하고 연말 재무제표 개선을 위해 줄였던 빚을 다시 늘리면서 1·4분기 자금부족 규모가 커진다. 하지만 올해는 불확실한 대외경제 여건에다 국내 경기의 미약한 회복세 등으로 투자를 줄이면서 자금부족 규모도 감소했다.

가계·기업·정부 등 3대 경제주체 중 가계와 기업이 씀씀이를 줄이면 구멍 난 총수요는 정부가 메웠다. 일반 정부는 재정 조기 집행으로 1·4분기 중 5조5,000억원의 자금부족을 기록했다. 지난해 4·4분기 재정절벽을 우려해 예산집행을 미루면서 무려 9조4,000억원의 자금잉여를 보였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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