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어요. 그런데 남자집에서 저를 반대합니다. 종교가 다르다고요. 제가 나이가 더 많다고, 제 성(姓)이 고집이 있어보인다고, 제가 태어난 지방이 싫다고 합니다. 할머니, 그 남자를 포기해야 할까요?』얼마전 인터넷을 통해 문옥동 할머니(67)에게 온 사연이다.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 사랑만큼 소중한게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용기를 되찾은 상담자는 며칠 뒤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E_메일을 보내왔다.
문옥동 할머니. 그녀는 지난달 「여성정보문화 21」이 창간한 여성웹진 「이매진」(IMAGINE.OR.KR)에 구수한 인생상담 코너를 열었다. 이름은 「문옥동 할머니의 인생상담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고민을 털어놓고, 희망을 찾았다.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 부족한 미혼 여성들에게는 푸근한 할머니요, 아직 낮설고 어 은 며느리에게는 사랑과 관심으로 감싸줄 수 있는 시어머니다. 그래서 못살겠다고 등을 돌리던 며느리나 시어머니도 문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이해와 아량으로 마음을 풀고만다.
문 할머니가 하는 일은 모두가 봉사활동이다(본인은 대단한 봉사가 아니라고 극구 항변한다).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수년째 인생상담을 해주고 있지만 댓가라고는 전혀 없다. 그져 공생공존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그마한 지혜를 나누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 속에 쌓인 게 많아요. 그걸 터뜨리게 해야 합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기 전에 그들의 기를 살리고 꿈을 키워주는 거죠.』
문옥동 할머니는 따로 상담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평생 살아온 이야기들을 네티즌들에게 들려 준다. 같이 가자고, 외롭지 않다고, 자기는 작은 행복을 가질 테니까 너희들은 큰 행복을 가지라고 등을 두들긴다.
할머니는 답변을 올리기 전에 꼭 기도를 한다.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닌지, 또다른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그런 할머니에게서 「참 사랑」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할머니는 이 상담 코너가 불만이다.
『한번 상담하고, 내가 답변하고 그리고 끝이에요. 정말 문제가 해결될까요. 다른 문제는 안 일어날까요. 또 내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까요.』
문옥동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사이버 공동체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해결방법을 찾고, 고민하고, 사랑을 나눈다. 상담을 통해 한 사람이 할머니와 연결되고, 그가 할머니를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그녀는 그런 어울림이 인터넷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당연히 노인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정부와 사회가 노인들의 의식을 세워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노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전국을 도는데, 우리가 그러면 뒤에서 흉본다는 것이다.
『노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줄 때도 조심해야 해요. 요즘 「재미」로만 접근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잘못하면 골방에 컴퓨터와 노인을 가둬놓고는 오락거리를 줬다고 착각할 수 있어요. 고립이 더 심해지는 거죠. 전 남편 있을 때는 컴퓨터 안켜요.』 /김상연 기자 DREA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