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E-메일이 날아온다. 많은 사람이 똑 같은 편지를 받기도 한다. 이럴 경우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다. 답장을 하는 게 무의미한 편지, 일방적인 편지다. 이런 편지는 수신자에게 고통을 주는 `스팸 메일` 혹은 `정크 메일`이라고 불린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별장으로 활용해 온 청남대의 충북도 반환을 앞둔 지난 4월18일과 어버이날인 5월8일 국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공무원 및 청와대 홈페이지 가입 회원 등에게 보내졌다. 두 번째 편지는 동창회 사이트 `아이러브스쿨` 회원 수백만 명에게도 함께 보내졌다. 편지를 받은 국민들은 `나에게 편지를 보냈네`라는 순간적 기쁨을 잠시 맛보았을 뿐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받았군`이라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노 대통령은 5일에도 공개된 편지를 보냈다. 이번 편지는 일반 국민들에게 보낸 게 아니었다. 편지 첫 줄에 `이기명 선생님에게 올리는 글`이라고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적혀 있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편지를 받는 사람이 친분관계에 있고, 편지를 받는 사람은 원하면 답장을 쓸 수도 있는 개인적 편지였다.
하지만 이 편지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됐으며 보도의 편의를 위해 언론사에도 미리 전달됐다. 편지를 쓴 사람은 대통령이지만 마지막 수정작업을 한 사람은 `열심히 일한 당신이여, 떠나라`라는 말을 유행시킨 저명한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왜 편지를 썼을까. 왜 공개했을까. 추론하면 언론이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책임한 보도를 해서 존경 받는 원로작가가 부도덕자로 몰리게 됐다는 상황을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편지가 정부 기관의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언론에 널리 알려진 점에서 대통령의 편지가 `스팸 메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개인적 편지는 아니다. 노 대통령은 장수천 채무변제과정에서 의혹을 받고있는 이기명씨의 억울함을 위로하는 수단으로 공개된 편지를 선택한 셈이다. 과연 국정최고책임자가 특정인과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위로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김대환기자(정치부) d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