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Culture & Life]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한국문학 해외 진출 돕고 세계적 번역기관 도약해야죠<br>미·유럽시장서 성공하려면 메이저 출판사 통해 소설 출간 활성화 시켜야<br>한국 배경 판타지·추리 등 장르 다양화 노력하고 정부·기업 과감한 지원 절실



"지난 1년 반 동안 조직을 개편하고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힘썼다면 남은 임기에는 우리 문학의 세계화, 특히 영어권 진출에 주력할거예요. 독일의 괴테인스티튜트나 프랑스의 알리앙스프랑쇠즈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문화기관으로 자리잡도록 노력할 겁니다."

최근 서울 삼성동 한국문학번역원 사옥에서 만난 김성곤(64ㆍ사진)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은 우리 문학의 영미권 진출과 세계적인 번역기관 도약을 강조했다. 번역원은 김 원장의 취임 이래 번역출판본부를 확대해 영어팀을 창설하고 전자책 전담팀과 전자도서관, 번역전문도서관도 독립 운영하는 등 체계 개편을 진행해왔다. 또 이미지 개선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국회와 기획재정부를 돌며 좋은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국고전번역원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ㆍ국제교류재단 등 여러 기관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협업체제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번역원은 지난해 말 문화부 장관 표창을 받은 것은 물론 올해 기관 및 기관장 경영평가에서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우수기관'에 선정됐다. 그는 조직 내부에서는 물론 외부의 인식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영미권으로의 성공적인 진출을 위해 무엇보다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대형 출판사의 번역작품 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좋은 작품과 번역만큼이나 좋은 출판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간 미국에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은 시집 정도만, 그것도 중소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는 수준이었다. 이제 소설을 미국과 유럽 메이저 출판사에서 내놓게 할 것이다. 또 각국의 한국문화원과 협력해 괴테인스티튜트 같은 문학원을 설립하고 우리 문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허브로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번역원이 현재 번역가 육성을 위해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를 정식 대학원 과정으로 승격시키고 젊은 번역가를 집중 양성해 전문번역단을 만드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김 원장은 번역에 있어 단지 텍스트를 다른 나라 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전반적으로 제대로 된 번역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번역원은 이미 해외에서 상영되는 영화, 공연되는 뮤지컬 등에 들어가는 자막 작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를테면 뮤지컬 '명성왕후'에서 왕이나 왕비의 대사는 적어도 셰익스피어 수준의 운율과 품격이 갖춰져야 작품의 내용이 더 적절하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과 영국ㆍ프랑스ㆍ스페인ㆍ러시아 등에서 매년 해외 포럼을 열고 있고 이를 더 많은 나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출판산업을 전반적으로 지원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도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현재 문학과 인문ㆍ아동 등의 해외 번역ㆍ출간에 집중하고 있는 번역원이지만 출판진흥원을 통해 해외에 출간되는 경우에도 그간 해외 출판에이전시와의 노하우를 활용해 돕고 있다. 이미 해외 독후감대회에 협력하고 있고 조만간 출판진흥원과의 공식적인 MOU 체결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그간 해외에 번역ㆍ출간된 한국문학이 2,800종에 달했는데도 아직까지 특별히 눈에 띄는 성과는 잘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또 해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될 즈음이면 수년째 고은 시인이 으레 물망에 오르지만 막상 해외에서 책이 주목 받고 실제 판매에서 성과를 올린 경우는 없다. 물론 지난 2011년 소설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해외에서 큰 이슈를 만들어냈지만 단발적인 사건이었을 뿐 이후 제2, 제3의 신경숙이 등장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김 원장은 이에 대해 아직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적인 인지도가 낮다는 점, 중국이나 일본 대비 번역된 책 종수나 재정적 지원 측면에서 아직 멀었다고 지적했다. 가까운 예로 2011년 독일에서 출간된 일본 작품이 700여종에 달했던 반면 한국 작품은 10여종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한국 문학의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작가들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국내 작가가 해외에 진출해도 판매가 잘 안 되는 것은 무엇보다 한국문학 독자가 적고 그나마도 고급독자 위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문학계도 바뀌어야 합니다. 문학적인 본질을 지키더라도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 늘어나고 다양한 대중매체와도 협업해야 합니다. 종이 책이 사라지는 마당에 기존 양식만 고수하면 천편일률적인 예전 책들은 박물관행이 되기 십상이에요."

실제로 미국 아마존의 전자책 자회사인 아마존 크로싱은 한국문학, 특히 추리나 미스터리ㆍ판타지 등 장르소설을 요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외 에이전시들은 그림이 삽입된 아동소설에 대한 가능성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김 원장은 움베르트 에코나 오르한 파묵, 댄 브라운도 모두 역사추리 등 장르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세계 최대 출판업체 베텔스만의 랜덤하우스도 장르소설을 원한다. 재미 있으면서도 유익하고 깊이 있으면서도 흥미로워야 전세계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판타지나 추리소설의 경우 한국 지역이나 역사를 배경으로 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 아류로는 의미 없다. 당장 일본 추리소설만 해도 일본을 배경으로 그들의 문제를 다룬다. 지역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의식이 있는 작품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또 문장의 측면에서도 "우리 작품을 보면 문장이 느슨하거나 별 의미 없는 문장이 쓰인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또 대부분의 문장이 '∼다'로 끝나는 것도 약점이다. 그런 부분이 철저한 영미권에서 우리 책이 잘 읽히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한류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현재가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가수 싸이가 지난해부터 '문화 실크로드' 역할을 해주면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졌지만 겨우 시작 단계인 이 정도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K팝 공연 때 우리 문학작품 부스를 열어 홍보하고 영화로도 함께 진출해야 합니다. 또 외국인이 많이 묵는 호텔에 한국문학 번역서적을 비치하는 등 여러 방법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어 정부나 교육부의 인식 변화도 촉구했다. "교수가 전공 분야의 논문이나 저서를 출간하면 평점이 높아지지만 번역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못합니다. 그러니 교수들이 번역 작업을 기피하고 출판업계에서도 번역료가 상대적으로 박합니다. 이를 개선하면 보다 번역출간이 활성화될 것입니다."


그는 특히 한국 문학작품의 해외 진출에 우리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이 해외 대학에 일본학 과정을 열고 교수를 채용하도록 지원합니다. 그 교수들이 해외에서 일본 관련 이슈가 불거지면 현지 매체에 글을 올려 옹호 여론을 주도하고 유학생도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미국과 캐나다에 각각 1명씩 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정도예요. 교수당 연간 200만~300만달러 정도면 충분한데 대기업의 홍보비용에서 이 정도는 티도 안 나는 수준입니다."

관련기사



인터뷰를 마치며 김 원장은 당부의 말을 더했다. "문학계에서 '번역자는 반역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비판을 많이 듣습니다. 또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가 번역 과정에서 향기를 잃는다'고 폄하한 적도 있을 정도예요. 하지만 좋은 번역은 향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번역가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He is…



▲1949년 전북 전주

▲1982년 미국 뉴욕주립대 영어학 박사

▲1984년 미국 컬럼비아대 비교문학 박사

▲1984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1986년 '오늘의 책' 수상

▲2003년 한국현대영미소설학회 회장

▲2007년 제18회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

▲2012년~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2013년 체코 외교부 훈장



■ 번역가 양성 어떻게
번역아카데미 대학원 승격
30명 규모 전문번역단 추진




지난해 2월 취임한 김성곤 원장은 서울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국내에서 손꼽히는 번역가다. 그는 지난 1986년 저서 '미로 속의 언어'가 '오늘의 책'으로, 1990년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선정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번역가'로 선정됐다. 또 2007년에는 김환태평론문학상도 수상했다.

김 원장이 생각하는 번역가의 자질은 어떤 것일까. 그는 무엇보다 양국의 문화ㆍ언어에 대한 높은 이해와 더불어 문학적인 감각, 문장력을 강조했다. 또 번역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 그리고 자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단지 한글을 영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맞춰 문장을 정리하고 현지화하는 '문화번역'이 중요하다. 현지인에게 호소력을 가지려면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또 다른 원작을 만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번역가 육성을 위해 그는 기존 번역아카데미를 정식 대학원 과정으로 승격시키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대학과의 학점 교류가 가능해져 더 많은 해외 고급인력을 한국으로 불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교수와 학생 확보 모두 예산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또 젊은 번역가를 집중 양성해 전문번역단도 만든다. 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정통해질수록 번역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김 원장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에게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또 해외 독자에게 호소력을 갖는 문장을 가진 전속 번역자가 있었다. 이미 수상한 중국의 모옌,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매년 물망에 오르는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모두 그렇다. 북미권을 목표로 한국문학 번역가 30명을 확보해 전문번역단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재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